말씀

170118 두번째 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주사랑교회 0 3,693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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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은 계명 중에 가장 긴 구절입니다. 여기에는 4가지 금지명령이 있습니다.  

 

첫번째 금지명령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우상이란 말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구절은 하박국 2장 18절입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여기서 우리말로 똑같이 번역된 '우상'의 원어는 각기 다릅니다. 새긴 우상은 '페셀, 부어만든 우상은 '마세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은 '엘릴'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형상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하셨던 일과 비슷한 일을 인간이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재능과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고 마치 그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형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상상과 노동을 통해 형상을 제작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능력으로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인간이 만든 것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든 그 형상들을 절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핵심적으로 금지하신 것은 하나님 아닌 것에 인간이 절하고 섬기는 행위입니다. 

'절하다'로 번역된 '샤하'라는 단어는 무릎꿇다. 존경하다. 예배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섬기다'로 번역된 '아바드'는 경작한다. 일하다에서 섬긴다 까지 폭 넓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걸 설명할 때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우상숭배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예배하고 섬기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타락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에덴에서 쫒겨나 가시덤불과 엉겅귀가 있는 땅에서 땀을 흘리며 먹고 사는데 그 삶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은 여전히 그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한다. 이것이 분명히 드러난 것은 '가인과 아벨'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죽이려는 가인에게 먼저 오셔서 악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욕망으로 아벨을 죽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눈에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하나님을 독점하고 싶어 합니다. 그 욕망이 눈에 보이는 하나님 즉 우상입니다. 

 

인간은 자기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예배하려고 합니다. 그것으로 확실한 하나님 자기가 독점할 수 있는 신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한한 존재이시며 인간의 지혜로 한정시킬 수 없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며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이 우상이며 이 욕망은 모든 인간, 신앙인에게도 대단히 깊게 뿌리 내린 욕망입니다. 

 

히스기야 시대의 종교개혁을 설명하는 열왕기하 18장에 흥미로운 기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열왕기하 18:4)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이 보이셨던 은혜를 상징하는 놋뱀이 우상 중의 하나로 숭배되고 있었던 겁니다. 놋뱀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고 형식과 물질만 남아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분이시며 하나님 아닌것에 예배하고 섬기는 것, 하나님을 인간의 욕망의 도구로 만드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자기 욕망의 도구로 만든 사람은 결국 모든 이웃과 타인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해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34:14)

 

하나님을 질투라고 한 이유는 뭘까요? 

질투는 사랑과 소속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자유를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며 삶의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인간은 자기 욕망과 필요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만 반드시 그 우상의 지배를 받게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에 저주와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갚는 것은 삼사대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천대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은혜는 확연히 비대칭입니다. 은혜가 훨씬 큽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인간에게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 은혜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한 그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에 보이게 나타셨고 이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며 십자가와 부활로 증거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안에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상을 금지하신 하나님에게 성도가 드릴 응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한1서 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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