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욥이 모든 것을 잃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욕할거라, 하나님을 바라크 할 것이라 했지만, 이 말은 반만 맞았습니다. 욥이 바라크했지만 욕이 아니라, 찬송의 바라크를 한 겁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알몸이 되어서도,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바라크의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크합니다.
욥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소유와 가치가 사라졌을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경외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발가벗고 머리털이 없는 알몸이 되어서도 그가 받은 가장 큰 복인 하나님의 종이 되는 복,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복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우리는 욥이 아니고, <욥기>는 이제 겨우 1장밖에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욥기>1장의 불가능해보이는 그 신앙고백이, 결국 우리 삶의 마지막 고백이 되기를 믿고 바라고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언젠가, 내가 가졌던 것을 모두 떠나 보내고, 알몸이 되어 땅에 엎드려 “주신 것도 하나님, 가져간 것도 하나님, 하나님 찬송 받으소서” 이렇게 고백해야할 어떤 하루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걸 죽음이라고 하지요.
어쩌면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고백 하나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훈련과 깨달음과 기쁨과 슬픔을 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욥처럼 신앙고백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하지도,
너도 욥처럼 신앙고백을 해야한다. 이렇게 강요하지도 마세요.
내가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건 불가능하다. 미리 포기하지도 말구요.
다만, 겸손하게 욥의 신앙고백을 가슴에 새기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하는 어느 하루를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알몸이 되어서도, 삶에 마지막에서도 가질 수 있는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질문해보세요. 뭘 가져가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그 은혜, 이거 하나 남지 않겠습니까?
주신 것도 하나님, 가져가신 것도 하나님, 하나님 찬송받으소서.
때가 되었을 때 이 고백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알몸이 되는 어느날,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찬송받으소서, 이 말 하나 가져갈 수 있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