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20년 11월 8일 <고난을 향한 자유>

주사랑교회 0 804

나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많은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왕을 존대하는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명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까다롭고 심술맞아서 나를 부당하게 대하고 슬프게 하는 주인입니다.

문제는 나는 하인이고, 까다로운 그 사람은 주인이라는 겁니다.

하인은 주인을 바꿀수 없고, 주인이 변하도록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나를 부당하게 대한다고 법에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사회 법과 제도는 주인이 하인을 지배하도록 합법화하기때문입니다.

내가 영향력을 발휘해 못된 주인과 잘못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최대한 그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바꿀수 없는 관계와 체계가 있고, 시대의 한계도 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지요. 

나에게 명령하는 까다로운 상관과 사장이 있고, 고객이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지배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합의한 제도와 법으로 체계화되어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의 일상과 생계가 걸려있어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단지, 선하고 너그러운 다른 주인을 부러워하는 하인처럼, 

나도 좀 더 좋은 조직, 더 나은 처지에서 일할수 있기 바라거나 

아니면 더 까다로운 주인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할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까다로운 주인 밑에 있어서 자유가 없는 존재라 여겨졌던 하인에게 자유를 말합니다. 

주인과 사회제도를 바꿀 수 없지만, 한탄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 조건과 상황에서도 자유를 잊지말라는 겁니다. 

이 자유는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게 아니라 선을 행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증언합니다. 

베드로사도가 말한 자유는 부당하게 받는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유,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자유,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본과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먹지를 밑에 대고 쓰면 똑 같은 그림이나 글자가 그려지지요.

이것이 본입니다. 그리고 자취는 발자국이란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원본이고 그 분이 걸어가신 것이 발자국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 분의 삶과 똑같을 수 없고, 그 길을 그대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복사본이라 원본보다 질이 떨어지고, 

어디까지 그 분의 발자국을 따라 가야할지 망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과거의 죄가 가리워지는 자유뿐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이라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관계와 상황에서도   

선택하고 결단해서 예수를 닮고 따를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입니다. 

예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유로, 

기꺼이,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본과 자취를 따르는 겁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죽음 앞에서 자유로웠던 여호와의 종을 예언했고

신약은 그 분이 예수그리스도인 것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이사야서 53장을 인용하면서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웠던 예수그리스도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본받고 따라야할 본과 자취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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