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12~13절)
십계명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두개의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셨는데
첫번째 돌판에는 1~4계명, 두번째 돌판에는 5~10계명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첫번째 돌판의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두번째 돌판의 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두가지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두번째 돌판에 새겨진 계명 중에 앞에 있는 두 개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12절)과 살인하지 말라(13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앞서는 겁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보다 살인이 더 중대한 범죄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에서는 부모 공경의 명령이 살인 금지 명령보다 앞에 나옵니다. 또한 이 두 계명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을 설명하는 출애굽기 21장에서는 자기 부모를 때린 자와 저주한 사람은 반드시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합니다.(출 21:15, 17)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살인금지 명령이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계명 중에 5계명과 6계명은 함께 묶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5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부모뜻에 따르라’가 아닙니다.
'공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바드’입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무게’를 의미합니다. '무겁게 하다.' '많게 하다'는 기본 뜻에서 ‘존재감 있게 여긴다.’ ‘예배한다.’ ‘공경한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그래서 5계명을 히브리어 뜻대로 직역하면
‘네 부모를 무게있게, 존재감 있게 대하라’가 됩니다.
달리 말하면 ‘부모를 없는 것처럼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가 부모의 존재를 무시할 때가 언제일까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모가 무능할 때입니다.
고대 사회는 신분제 사회로. 대체로 부모의 부와 신분을 자식이 물려받습니다.
가난하고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은 무능한 부모가 됩니다. 또한 노동력을 상실한 늙은 부모 역시 자식에게 부담만 되는 무능한 부모입니다. 가장 무능한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일찍 죽어 자식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부모일 겁니다.
무능한 부모를 둔 자식은 ‘나에게 해준게 뭐 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재감 있게 대하라는 제 5계명은 자식의 무시에서 무능한 부모를 보호합니다.
모든 인간은 부모를 통해 존재합니다.
'내 생명의 시작이 된 부모를 그 자체로 존중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번째 경우,부모가 불의할 때 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악하고 폭력적이며 무책임하고 무정한 부모도 있습니다. 5계명은 이런 경우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이 경우가 제 5계명을 가장 어렵게 만듭니다.
은수연이란 분이 쓴 <<눈물로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수기가 있습니다. 차마 권하지 못할 만큼 읽기가 괴로운 책입니다. 친족 성폭행의 경험을 담은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은수연씨의 아버지는 자기 친 딸을 어려서부터 학대했고 5학년때부터 성폭행을 합니다. 은수연씨는 6학년때 임신과 낙태를 경험합니다. 수능시험 전날 딸을 호텔로 끌고가 성폭행하려다 말을 안듣자 밤새 폭행을 하는 장면에 이르면 더 이상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이 짐승같은 은수연씨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참한 폭력과 모멸감을 당한 소녀에게 제 5계명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 아버지를 공경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소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는것, 아버지의 존재를 마음에서 지우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제5계명은 악한 부모 밑에서 고통받는 자녀에게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요구하는 절대 명령입니다.
부모에 대한 절망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입니다.
악한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절망을 극복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나쁜 부모가 되려고 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태어난 딸을 보며 이 아이를 키워 성폭행하겠다고 마음 먹는 아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른 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믿음,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용서할 만한 때가 있었습니다.
나쁜 부모, 폭력적이고 무책임하고 무정한 부모도 그렇지 않을때가 있었을 겁니다.
악한 부모를 둔 사람에게 5계명은 내 부모는 처음부터 그랬고 마지막까지 그럴거라는 절망과 부모가 준 고통은 아무 의미없을 거라는 회의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이 됩니다. 지우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부모지만 이 부모가 주는 무게와 상처를 견디며 희망을 가지라는 겁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은, 내게 사랑을 주어야할 사람이 고통을 주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절망해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타인의 존재를 지우지 않는 사람에게 반드시 응답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5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과 연결됩니다.
여섯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원어로는 ‘로 라차흐’라는 단순한 문장입니다.
원어 그대로 해석하면 ‘죽이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동사의 목적어가 없습니다.
무엇을 죽이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에 대해 두 가지 해석 방향이 있고 영어 성경도 이 구절을 kill과 murder로 번역합니다.
첫번째는 ‘죽이지 말라’를 넓은 의미로 해석해 전체 생물체에 적용하는 겁니다.
이 경우 무고한 생명에 대한 살해 금지 명령이 됩니다. 기독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생명평화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해석은 문제가 있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산 짐승을 죽이는 일, 육식을 허용하셨기 때문입니다. 6계명을 모든 생물에게 적용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살생, 살인을 명령하신 경우가 성경에 너무 자주 나온다는 겁니다. 최초의 살생은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자체가 동물을 죽여야 가능합니다.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전체 생물체에 적용하는 것은 의도는 좋지만 성경과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해석은 라차흐, 살해를, 사람을 죽이는 것, 불법적인 살인으로 한정합니다.
자신의 분을 해소하고 힘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런 해석을 따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의 번역을 사람을 죽이지 말라. 즉 '살인하지 말라’로 번역한 겁니다.
신학자 루터가 ‘군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 적 있습니다.
살인을 업으로 하는 장점적인 살인자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뜻으로 6계명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군인의 살인은 더 큰 선을 위한 살인, 사회적인 승인을 받은 합법적인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 5계명을 불법적인 살인으로 한정해서 해석하는 전통에 문제를 제기하십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21~22입니다.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6계명을 불법적인 살인으로 제한하지 않고 뜻을 확장하십니다.
형제에게 화 내고 바보라 욕하고 멍청이라고 경멸하는 것이 살인이며,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겁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살인이 과연 뭘까요?
살인을 금지하는 6계명은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와 연관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5계명을 어떤 부모가 무능하고 불의하더라도 없는 것처럼 대하지 말라.
존재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이것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연결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을 때가 언제 일까요?
누군가를 ‘소리 안나는 총으로 쏴죽이고 싶은' 상황이 왜 생길까요?
그것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을 때, 타인이 내 삶에 방해가 되는 상황일겁니다.
소극적으로는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적극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내 삶에서 제거하는 것이 살인입니다.
타인의 무게와 존재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행위가 살인입니다.
누군가에게 화내고 경멸하고, 미워하고 꺼지라고 소리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살인의 근본 동기인 것을 아시고 이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역시 살인을 단지 육체적인 생명을 끊는 것으로 한정시키지 않습니다.
타인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내 욕망을 위해 타인의 인권과 권리를 무시하는 것을 살인으로 규정합니다.
신명기 22:25-26절입니다.
25.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26.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약혼한 처녀를 강간한 남자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과 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그녀의 사회적인 삶, 인격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물학적인 죽음 뿐 아니라 인격적인 죽음, 영혼의 살해도 살인으로 인정합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과 인격이 하나님께 왔기때문입니다. 5계명과 6계명은 모든 인간에게 생명과 인격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랑의 삶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십계명의 근본정신을 되살리시고 완성하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격려하고 더불어 사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일 3:14-16
14.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