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70208 네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Ⅱ

주사랑교회 0 2,341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 8-11)
 
안식일은 창조자이며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자유를 바라보는 것이 안식입니다. 그런데 20장 6절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전제 조건으로 '6일동안 힘써 일할 것'을 제시합니다. 

2004년부터 우리나라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때 한기총을 비롯한 일부 개신교에서는 주5일 근무제는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 명한 십계명을 범하는 죄라며 주5일 근무제를 반대했습니다. 분명히 십계명에는 6일동안 열심히 일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제는 십계명이 말하는 '일' , '노동'이 과연 무엇이냐는 겁니다. 

인간에게 '노동'을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타락 전에도 인간은 에덴에서 각종 나무를 경작하며 돌보는 육체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세기 2장 15절)?

또한 인간은 각종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정신 노동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세기 2장 19절)

에덴의 여러 열매맺는 나무들을 돌보는 일은 많은 근력을 소모하는 일이고, 각 동물에게 특징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창조력이 필요한 정신 노동입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인간이 부여받은 노동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한 노동이었습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피조세계를 가꾸고 돌보는 활동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노동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세계에 참여하며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과 함께 노동도 함께 타락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에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처음 발견한 것은 '벌거벗은 몸'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없이 아무 것도 아닌 자신들의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때 인간은 최초의 노동으로 최초의 생산물을 만들어 냅니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만든 무화과 나무잎으로 만든 옷이 그것입니다.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기는 노동이 인간의 초라함을 감추는 노동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일을 통해 은혜를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인가 생산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부족을 감추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노동이 있는 그대로를 가꾸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없는 것을 만들고 부족함을 채워 자신의 벌거벗은 삶을 가리는 고된 일로 변질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그것으로 자기를 벗은 몸을 가려야 합니다. 무화과 나무잎으로 옷을 만들었던 인간은 옷 대신 성취,물질,명예,숫자등을 만들어 자신을 가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일을 통해 무엇인가 만들어 내야 하고 따라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직업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나무가 되려하지 않고 고양이는 고양이가 되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되려고 염려하고 계획하고 수고합니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냐, 얼마에 팔릴 수 있는 노동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높일 그 무엇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성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수고합니다. 

이렇게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국 '노동', '일'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노동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타락한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만들고 나누고 먹고 키우는 존재가 되라고, 일하는 존재가 되라고 합니다. 이것이 '엿새동안 힘껏 모든 일을 하라'는 구절의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지만 7일 중에 하루는 무엇인가 만들어내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무엇'과 '생산'에 두지 않고 '있음' '받음'에 두는 날입니다. 뭔가 만들고 되려는 욕망을 중지하고 주신 것을 누리면서 창조주이며 해방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시간, 이것이 진정한 휴식이고 '안식'입니다. 

안식은 단순한 종교적인 의식과 명령이 아닙니다. 10절에는 안식의 계명을 받은 사람의 정체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아들과 딸이 있는 부모이며 남종과 여종이 있는 주인입니다. 또한 가축이 있고 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자식과 종과 생산 수단과 재산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을 명령하는 사람이고 품삯을 주는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을이 아니고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입니다. 하나님은 사회적인 강자들에게 먼저 안식의 명령을 내리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 '너 먼저 쉬어라, 쉬되 반드시 함께 쉬라. 쉼을 보장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을 통해 일로 통제받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시고 인간 뿐 아니라 짐승도 쉴 수 있게 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신분인지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안식할 권리를 보장하십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주신 의무이며 권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을 요구합니다. 뭔가 만들어 내고 무엇인가 되어야 합니다. 높은 걸 성취하고 많은 걸 생산해야 효율적인 인간으로 대접받고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일하는 인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안식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휴식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가치와 자유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안식이 강자들만의 휴식이 되지 않도록 법으로 만들어 남자와 여자, 종과 주인, 나그네와 토박이, 사람과 짐승 모든 존재가 차별없이 안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경쟁과 생산성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에 참여하며 '더불어 쉬는 삶' 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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