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21년 4월 25일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주사랑교회 0 1,415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장 25-37절 ■2021.4.25

 

예수님께서는 이야기를 다 들려주신 후에 율법교사에게 너의 생각은 어떠냐? 질문 하십니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거야” 하시는게 아니라 율법교사를 존중하며 그 생각을 물어보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원래 가졌던 편견과 고집에서 벗어나길 바라셨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잘보세요.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 가 아닙니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입니다. 

“되겠느냐”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되겠느냐’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기노마이라는 단어인데 이건, '된다' '행한다' '만들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은 정해져있고, 고정된 된 게 아니다. 이웃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있는게 아니다.  이웃은 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이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이웃이 되는 것이 중요한거지요.

이웃은 되는 겁니다. 어떻게 이웃이 됩니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이웃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 자비는 긍휼이란 말로도 번역되는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강도 만난 사람은 매를 맞아 발가벗겨진 채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입은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민족에 속해 있는지, 어느 정도의 신분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강도 만난 사람에게 옷이 입혀져 있었다면 그 복장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아, 저 사람, 우리 유대인이구나” 이러면서 자비를 베풀었지 모릅니다. 그런데 강도 만난 사람은 식별을 할 수 없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상처만 보이는 사람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벌거벗겨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를 보고, 나는 당하지 말아야지 피해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에게서 상처를 보았고, 그 상처에서 아픔을 느꼈고 가까이 가서 치료해주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비를 베풀고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르지만 다가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고 도망치는 사람과 그 상처 때문에 다가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 사람 모르는 사람이야, 나도 상처입을까 무서워하며 도망치는 사람이 더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어떤 이익도 없는데도 자비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는 사람이 10%는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를 누군가의 이웃이 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는 몰라서 도망치고, 무서워 도망치고, 상황에 따라 이웃이 되었다, 아니었다 합니다.  

내 여유와 마음에 따라 선행을 베풀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의 능력이고 성품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 분의 자비를 이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선택하여 만드십니다.

그냥 모른척 지나왔던 그 사람이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걸리고 후회됩니다. 

그냥 잊어버리자가 아니라, 다음에는 그냥 지나치지 말자 결심하게 됩니다. 

나와 모르는 사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와서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그냥 지나쳤던 사람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그때는 몰랐던 아픔을 내 삶으로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아프고 슬프고 외로울 때, 뜻하지 않았던 사람의 도움을 받고 결국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자비라는 걸 알게 되어, 고통받는 세상에서, 벌거벗겨 쓰러진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명령을 발견하게 됩니다. 새 집을 집는 것처럼 수고하고 땀흘리며 힘을 다해, 시행 착오를 하면서도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 동행하시며 이웃이 되는 힘을 주실 것이고 그것이 나를 더 사랑하는 일인 것도 알게 하실 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열명 중 한명, 10%쯤 되는 사람들. 비록 10%지만 세상의 희망이고 치료제고 숨구멍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그런 사람들.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가 가서 행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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