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09-08-19 통(通)이냐 망(亡)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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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탄생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땅에 남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이 “불의 혀”처럼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침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타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제자들의 기도를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을 향해 “유대인들이 처형한 예수가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다”라고 추상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3천명이 회개했다는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저명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성령세례는 “전할 메시지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세례를 방언이나 성결 등으로 이해해 온 제게 그의 말씀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씀은 지극히 성경적이었습니다. 신학자들 중 어떤 이는 방언이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언어가 아니라 초대교회 민중들의 한 맺힌 소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의 분열된 언어들이 성령에 의해 극복되어 비로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역설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간에 말문이 트이고 뜻이 통하는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도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랫동안 주님을 모시면서 주님을 “생명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주님을 배반함으로써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체험한 이후 그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예수를 메시아로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고 거룩해서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달거나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는 성령을 통해 예수를 명확히 알게 되고 세상을 향해 선포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요즘 사방에서 “의사소통의 부재”에 대한 탄식소리가 들려옵니다. 정부와 국민 고용자와 노동자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세대와 세대 심지어 교회와 세상 사이에 의사소통의 단절이 마치 만성질환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결국 의사소통의 부재는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의 부재 궁극적으로는 관계의 단절 때문이며 이런 아픔을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지 않을까요? 하늘과 통하고 사람과 통하기 위해 말입니다. 기억합시다. 성령이 임할 때 세상이 통하고 성령이 떠날 때 세상이 망합니다. 성령은 소통의 영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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