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09-06-06 밤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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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는 어둠이 짙게 내렸습니다.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창문을 통해 저의 방을 비추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의 방이 거룩한 성소처럼 신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 전까지 가족들과 TV를 시청하며 편히 쉬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편한 복장과 자세로 드라마를 보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안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는 순간 밤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본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이 공간과 시간 이 순간의 제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동일하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 말입니다. 십자가는 이런 신비의 능력을 지닌 듯 합니다. 십자가는 변화의 근원적 동력인 것 같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공간 십자가를 바라본 순간 그리고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 모두 십자가를 통해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매달았던 십자가는 더 이상 무서운 ‘처형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은혜의 도구’로 변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른 시간은 더 이상 치욕스런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죽음 한 복판에서 생명이 용솟음치는 구원의 순간이었습니다. 육신의 안전을 위해 스승을 부인하고 사명을 포기했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음으로 마침내 제자의 도를 다하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날의 경험을 통해 무명의 이방인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죽음의 불안 앞에 절망하던 마틴 루터는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하늘의 영광을 포기한”하나님의 스캔들”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걸린 햇빛을 보았던 청년 윤동주는”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우러나는 피를 흘리겠네”라고 노래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익숙한 것이 죄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흔해서 마음 아플 때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십자가가 그 지나친 익숙함과 흔함의 대상이 된 것만 같아 하늘을 우러르기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교회에 예수의 십자가는 없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삶 속에서 베드로 시몬 동주의 십자가를 체험할 수 없을 것 같아 서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 밤에 대한민국 전역에서 붉게 빛나는 수 많은 십자가가 다시 한번 하늘의 사랑 예수의 생명 베드로의 용기 시몬의 축복 그리고 윤동주의 결단으로 살아나길 기도합니다. 간절히…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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