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09-04-26 사람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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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교회 홈페이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한때 교회의 소중한 가족이었던 얼굴들이 그곳에 행복한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은 이곳에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얼굴들로 그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일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더군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조심스럽게 설명하고 교회를 떠난 분도 계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황당하고 서운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게 덧없는 것이던가!”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남았습니다. 야속한 사람들!   그런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저의 모교회 담임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한동안 서운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후 의도적으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났습니다. 감정이 많이 누그러져 꼭 찾아 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바빴습니다. 마음은 있었지만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목사님의 모친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멀어 찾지 못하고 약간의 조의금만 보내드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못해 마침내 오늘 아침 전화를 드렸습니다. 5년만입니다. 반가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목사님의 음성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저는 “버릇없는 놈”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과시했던 베드로. 그러나 예수님이 체포되고 그의 무리가 불법집단으로 공개수배 되자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3번이나 저주하며 부인했던 베드로.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베드로를 친히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3번에 걸쳐 사랑을 확인한 후 자신의 양떼를 맡겼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주님의 “의리”를 보았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쉽게 버렸지만 스승은 용서와 사랑 그리고 의리로 무너진 관계를 “부활”시켰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정녕 “의리의 사나이”였습니다.    살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살얼음판 같은 인간관계를 체험하며 느끼는 존재의 위기감 때문입니다. 요동치는 허망한 감정 물질에 대한 수치스런 탐욕 지독히 이기적인 삶의 방식 앞에서 의리와 예의가 너무 쉽게 “헛소리”로 외면되는 현실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집 나간 아들을 여전히 기다리는 아버지를 만납니다. 인간들 사이에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시는 성령의 불을 체험합니다. 주사랑 가족들이여 이 외롭고 허망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봅시다. 누구도 허물 수 없고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의 띠”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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