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의 죽음을 가톨릭에서는 “선종”(善終)이라고 부르더군요. 선종의 뜻을 찾아보니 “선생복종”의 줄임말로 “착하게 살다가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는 한국의 가톨릭교회를 40여 년 간 탁월하게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민족의 양심”으로 무거운 책임을 다했습니다. 험한 세월을 착하게 살았고 이제 그 주어진 생을 다했으니 그의 죽음은 정녕 선종입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는가?’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출생은 자신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수동적 탄생이 아닌 능동적 삶의 결과로 주어진 죽음에 의해 결정되므로 생일잔치보다 추모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다소 과격하지만 그의 말 속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떠올려 봅니다. 그의 탄생은 초라했습니다. 성장도 평범했습니다. 집안도 교육도 직업도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애 마지막 3년은 “기적”이었습니다. 지옥 같던 현실에 천국을 세웠습니다. 죽음의 심장 골고다에 생명의 십자가를 박았습니다. 저주의 아우성 속에 용서를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죽음을 집행했던 로마군인은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진정한 “선종”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선종이 가톨릭 교도의 전유물일 수 없습니다. 유명 신학자에게만 죽음이 남다른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이 불가능의 신화로 처리되어도 안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부름이 어쩌면 “선종”으로의 부름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늘의 부름 말입니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정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숭고한 “푯대”입니다. 우리 그렇게 살다 갑시다. “선종”을 향하여!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