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교수님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 수업료가 매우 비쌉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곱씹을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명언’입니다. 먼저 인생을 경험했던 부모가 자식이 자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진심으로 훈계하지만, 정작 자식은 그 훈계를 “꼰데”의 잔소리로 흘려듣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결국 자신들이 직접 당해서 깨달을 때까지 부모의 실패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몸으로 배우며 어른이 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과 어른의 훈계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 동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자는 손목을 자르고도 다시 화투장을 만집니다. 성범죄자는 형무소까지 다녀왔지만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사기꾼은 그렇게 혼이 나고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부정행위하는 학생, 공금에 손을 대는 직원은 세월이 흘러도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합니다. 진지한 반성이 부재하고, 긍정적 변화가 보이지 않기에, 사회는 그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격리시킵니다.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오만해진 블레셋은 언약궤를 다곤 신전으로 옮겼다가 하나님께 혼쭐이 났습니다. 신상이 박살나고 무수한 백성들이 죽었던 것입니다. 일곱 달 동안이나 고생한 후, 그들은 깨닫고 정성을 다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보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도 처음에는 경고망동 하여 언약궤를 구경거리로 삼았다가 큰 재앙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오류를 깨닫고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겼으며,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성별하여 언약궤를 돌보게 했습니다. 비록 치명적 실수를 범했지만, 깨달은 후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속적 야망에 불타오르고, 육체적 욕망에 휩싸이다 망했다는 기록이 역사에 즐비합니다.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지나친 탐욕으로 성직을 매매하고, 세습하며, 신학마저 왜곡했던 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옛날의 죄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중병입니다. 자신의 죄를 궤변으로 정당화하면, 범죄입니다. 인간은 실수와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신자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반성과 회개 없이 하나님을 계속 무시한다면,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밖에 말입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