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답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고 신자들이 많은데 기독교의 평판이 좋지 못한 것은 신자답지 못한 신자들이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극소수의 반기독교적 사상가들을 제외하고 예수님이나 성경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타종교인도 심지어 무종교인도 예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존경을 표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지 않았던 저의 아버지도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무당이었던 사촌고모도 예수님을 존경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기독교인들에 대해선 고개를 흔드셨습니다. 저도 기독교인들이 싫을 때가 있습니다. 제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인 제 자신에 실망할 때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삶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속이 상하고 역겨울 때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다양한 형태의 분쟁으로 시끄럽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돌변할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세상에는 가난한 이들이 넘쳐나는데 교회는 날로 화려해집니다. 명품과 외제차로 무장한 성도들이 교회에 넘쳐나지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듭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바울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말씀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진정한 남자는 싸움 대신 기도에 능한 사람이며 고귀한 여인은 보석 대신 선행으로 치장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세상에는 기도보다 싸움에 분주한 남자들로 가득하며 선행보다 보석에 눈이 먼 여자들로 넘쳐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미래에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될까? 싸움에 능한 투사나 전사로? 아니면 겸손한 기도의 사람으로? 내 아내는 어떤 어머니로 기억될까? 명품과 보석에 넋이 나간 아줌마? 아니면 정말 착해서 눈이 부셨던 분? 수억 명의 사람이 있지만 진인(眞人)을 찾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참 신자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기도하는 아버지 선한 어머니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사람입니다. 우리가 도전해 봅시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