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도 선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늘 타인들에게도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제법 선한 그리스도인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만 뒤틀리거나 악화되면 저의 감정과 이성은 즉시 옛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악한 생각이 머리를 장악합니다. 말과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척은 할 수 있지만 선하려고 노력할 순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선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몸속에 악의 폭탄을 품고 삽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을 더 벌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연금과 보험에도 신경을 씁니다. 더 좋은 직장을 찾는 이유도 더 나은 사업을 구상하는 이유도 더 나은 투자처를 물색하는 이유도 그리고 더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이유도 모두 동일합니다.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불안 그 자체입니다. 이 사실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자명해집니다. 그렇게 안정과 안전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삶의 불안과 불안정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매주일 성도들에게 목자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들의 삶은 그야말로 “극적”입니다. 기막힌 사연들로 가득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고민 고통 그리고 눈물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들이 매주 그 절박한 사연들을 품고 교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것을 알기에 저는 그들의 얼굴 이름 사연 어쩌면 삶 자체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품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의 이기적인 자아 바쁜 일상 그리고 복잡한 삶의 관계들 때문에 번번이 그 약속과 다짐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정말 저는 목사로서 함량미달입니다. 나훔을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1:7). 나훔이 고백한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저와 달랐습니다. 동시에 제가 그토록 닮고 싶은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그분의 역사를 들으며 저는 오직 하나님만이 내 삶의 아니 모든 인간의 궁극적 해답임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는 참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선하지도 산성처럼 안정되지도 그렇다고 타인에 퍽 자상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선하시며 환난 날의 산성 같으시고 낙담한 우리를 깊이 이해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분 앞에 엎드리며 소망 중에 새해를 기다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훔의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