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1-08-28 그리스도인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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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축구경기 중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덕택에 수술을 하고 한동안 발목에 깁스를 한 채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 오른쪽 발목을 다쳤기에 운전을 할 수가 없어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찐하게 끼쳤습니다. 드디어 깁스를 푸는 날이 되어 병원엘 가야 했습니다. 역시 그날도 아는 목사님께 운전을 부탁했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의사와의 약속이 아침 이른 시간에 잡혔기 때문에 목사님께 무척 죄송했습니다. 아무튼 모든 일을 잘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목사님께 아침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 좋은 곳에 가서 식사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평소에도 유머감각이 대단했던 목사님의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감리교 목사들은 선행에 대한 대가로 향응이나 접대를 받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목사님의 그런 반응이 거부반응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밥 한 끼 먹는 것이 무슨 대단한 접대라고?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다 밥 먹는 데서 생기는 것인데. 그렇게 고지식해서야 쯧쯧…”당시에 저도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특히 도움만 받고 보답할 길이 없었기에 빚진 마음에 부담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 날 목사님의 말씀은 저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실 우리 삶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란 명분 속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얼마나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는 “은혜”라는 미명 하에 부끄러운 타협들이 정상적인 것처럼 심지어 아름다운 미덕처럼 정당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풍토 때문에 수많은 스캔들이 교회 주변에서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 바빌론의 임금이었던 느브갓네살이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절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의 권위에 눌린 모든 백성들이 주저 없이 그 명령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끌려 왔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치를 떠는 왕 앞에서 절만 하면 살려주겠다는 왕의 달콤한 회유 앞에서도 비록 자신들이 불에 타 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유혹과 위협 앞에서도 너무나 쉽게 신앙과 양심을 포기하는 저의 유약한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럽습니다. 비굴한 기회주의자도 아니요 무지한 열광주의자도 아닌 하나님 앞에 떳떳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리 그렇게 삽시다. 한발씩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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