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1-06-05 참으로 두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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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절에 주일학교 성가대를 지휘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 예배실에서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잡지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바람 난 아이들이 춤을 추며 선생님 뒤를 따릅니다. 마냥 행복한 아이들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있던 선생님이 시각장애자였고 선생님 바로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절대 의지하며 행복에 겨워 뒤를 따르는데 정작 선생님은 앞을 볼 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던 것입니다. 어설픈 만화처럼 그려졌던 그 장면에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식은땀이 흐릅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을 존경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들의 이름 대신 뒤에서 별명을 불렀습니다. 앞에서는 그분들 손에 들린 몽둥이에 기가 죽었지만 뒤에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며 그분들을 조롱했습니다. 특히 여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놀림감이었습니다. 농담 따먹기를 하며 교권을 부정했습니다. 또한 학교당국의 눈치만 보는 선생님들의 비겁을 비웃었습니다. 학생들의 인격에는 관심이 없고 성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선생님들을 경멸했습니다. 선생으로서의 도덕적 영향 대신 유능한 지식전달자로 만족하는 그분들의 태도도 못마땅했습니다. 도무지 닮고 싶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선생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개인적으로 친했던 분들도 계시고 뛰어난 지성에 감탄했던 분들도 계시며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던 모범적인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롤 모델로 삼으며 평생 흠모하고 싶은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다짐과 달리 어느덧 저도 선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소위 영혼을 치유하고 삶을 인도해야 하는 목사가 된 것입니다. 사이비 교사의 위험을 지적했던 그림에 충격을 받았고 본받을 만한 스승을 만나지 못해 서글펐던 제가 정작 선생의 자리에 서 있는 지금 과연 저의 모습은 어떨까요? 저는 제대로 된 선생일까요? 저를 목회자로 신뢰하며 오늘도 저를 바라보는 성도들께 저는 정말 영혼이 순결하고 삶으로 도를 가르치며 진리 앞에 용감한 성직자요 선생으로 살고 있을까요? 정말 성도들에게 닮고 싶은 스승으로 따르고 싶은 지도자로 앞서가고 있을까요? 역대하 12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혹여나 저의 부덕함이 성도들에게 악 영향을 끼쳐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게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할 수 있으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했던 바울 사도의 교훈이 오늘밤 무서운 죽비가 되어 저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두렵습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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