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0-10-16 끝까지 신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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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그리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부동(不動) 즉 ‘변하지 않음’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역으로 인간의 특징은 끝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철학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고 우리가 얼마나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인지 우리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혈서까지 쓰며 맺은 약속이 얼마나 허망하게 공수표가 되는지 새해 초에 다짐한 비장한 각오가 얼마나 쉽게 망각되는지 심지어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뉘우친 죄를 얼마나 뻔뻔스럽게 반복하는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런 삶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아닌 바로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반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3년 전 교회에 부임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했던 각오와 결단이 어느 샌가 흐지부지되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다시 한번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며 결단했던 약속들이 또 다시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 새벽예배 시 온몸으로 절규하며 약속했던 내용마저 가슴과 기억에서 아득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아무리 악을 써도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 인간의 변덕과 변질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일까요? 요즘엔 일생 동안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께 무한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십 년이 넘게 누워있는 병든 아내를 한결 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제 눈에 그저 기적입니다. 한 교회에서 신실과 성실로 40년간 목회하고 은퇴하는 늙은 목사의 모습은 거룩함 그 자체입니다. 모두가 떠난 고향을 오늘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있는 주름진 농부의 모습은 정말 숭고합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철없는 아들을 오늘도 변함없이 기다리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은 사랑의 참 뜻을 가르쳐줍니다. 벌써 한 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10월 중순이라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나 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온갖 상념에 요동하는 불쌍한 자신의 모습에 많이 실망했나 봅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하고 건물보다 사람에 집중하며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겠다던 초심(初心)이 자꾸만 흔들리는 현실에 슬며시 두려웠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중심이 흔들리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이 저의 실존이라 해도 이런 불쌍한 존재를 축복하시고 위로하시고 사용하시는 흔들림 없는 하나님 앞에 또 한번 철면피의 배짱으로 다시 도전해 보렵니다. 부디 완주할 수 있도록 달려갈 구간을 온전히 끝마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도해주세요.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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