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4.03.23. 복음은 공중부양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주사랑교회 0 2,293
복음은 공중부양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셨고, 자신은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새벽 바다에 밀어닥친 풍랑으로 제자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어느 샌가,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비록 몸은 산 위에 있었지만, 예수의 마음은 늘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에도, 아니 하나님과의 기도마저 중단하고,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바다 위를 달리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그렇게 묘사합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많이 닮았습니다. 사마리아인 앞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유대인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외면했지요. 그들이라고 동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들은 눈길과 발길을 돌렸습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상처 난 유대인을 정성껏 도왔습니다. 예수도 위기에 처한 제자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발견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뱃사람들인 제자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께서 요동치는 바다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놀랍고 신기하게 보였겠지요. 그 장면에 압도된 베드로는 자신도 예수처럼 물 위를 걷고 싶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위기상황도 잊고, 자신들을 찾아오신 예수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말입니다.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한 후, 마귀는 예수에게 돌을 떡으로 바꾸고, 성벽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런 초능력이 종교지도자로서 성공할 자질이라 설득한 것입니다. 빌립이 행한 표적에 매료된 마술사 시몬은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성령의 능력을 획득하면, 마술사로서 성공하리라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처럼 물위를 걷고 싶어 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우리는 동일한 종교적 욕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물위를 걷고 바람을 잔잔케 하는 예수의 능력에 압도되어,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제자들을 위해 기도마저 중단하고 바다 위를 달려온 예수의 마음과 물 위를 걷는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에 집착하는 베드로의 욕망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보다 제자들을 위해 험한 바다 위를 달려오신 예수의 마음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진정한 증거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수의 진면목이 아닐까요? 기억합시다. 복음은 장풍이나 공중부양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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