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4.07.06. 우리에게 한나가 필요합니다

주사랑교회 0 1,453

우리에게 한나가 필요합니다

한나는 매년 남편과 함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 갈 때마다, 한나는 제사장으로 훈련 받는 아들 사무엘을 위해 에봇을 지어다 입혔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제복이었고, 제사장의 업무와 직접적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한나의 정성과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아들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 앞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모습은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하며 제사를 무시했던 모습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아들을 위해 애봇을 만들고 매년 성전에 올라 아들을 만났던 한나의 모습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성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교회에서 성직자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입니다. 한 사람의 온전한 성직자 덕택에 해체될 교회가 기사회생할 수고, 역으로 한 사람의 타락한 성직자 때문에 멀쩡한 교회가 순식간에 콩가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직자가 신학교에서 양성되고, 성도들은 성직자의 영향에 수동적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나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성직자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엘리로 대표되는 신학교뿐 아니라, 한나로 대표되는 성도들(교회)의 책임도 결정적입니다. 같은 엘리 밑에서 성장한 사무엘이 엘리의 아들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성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엘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전무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성장 과정엔 늘 어머니가 함께 했습니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의 일차적 이유를 타락한 목회자들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그런 목회자들을 배출한 신학교를 비난합니다. 물론, 그런 비판은 상당부분 정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서 성도들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온전한 성직자로 성장하는데는 성도들의 책임도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한나 같은 성도들이 존재할 때, 그들의 목회자는 사무엘처럼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목회자는 엘리의 아들처럼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교회가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교황이 문제의 원인으로 전락했을 때, 루터는 독일의 평신도 귀족들에게 교회개혁의 책임을 촉구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의 입지가 자꾸만 좁아지고, 그들에게 개혁의 지도력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성도들이 움직일 때입니다. 성도들의 손에 의해 사무엘 같은 목회자들이 배출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무책임 속에 엘리의 아들들이 계속 활개 칠 것인가? 한국교회의 운명은 그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한국교회에 한나가 필요합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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