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런 비상사태에서 이스라엘은 예전에 행했던 방식대로 전쟁에 나섭니다. 하지만 블레셋에게 대패하고 4천 명의 병사를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기로 결정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와 함께 전쟁에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블레셋에 크게 패합니다. 이번에는 삼만 명이 죽었고, 홉니와 비스하스도 목숨을 읽었으며, 심지어 언약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언약궤까지 있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민족에게 참패를 당하다니요? 저도 정답은 모릅니다. 하지만 장로들의 몇 가지 실책이 보입니다. 첫째, 장로들은 사무엘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하시며,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장로들은 사무엘을 배제하고 자신들끼리 모든 일을 결정했습니다. 둘째, 장로들은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경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쟁승리를 위해 언약궤를 가져온 것입니다. 셋째, 장로들은 그 상황에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데려왔습니다. “적군을 치러갈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해야 하는데(신23:9), 이스라엘은 “불량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전쟁에 불러들인 것입니다. 패배를 자초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치명적 실수와 참담한 패배는 단지 성경에만 국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도 동일한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고, 인간들의 잔머리와 권모술수만 넘칠 수밖에요. 둘째,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이기적 탐욕에 장악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마저 마케팅에 이용될 수밖에요. 셋째, 한국교회는 이렇게 중요한 때에, 아미 하나님이 버린 죄인들을 강단에 계속 세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현상을 말세의 징조로 규정했습니다(마24:15).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인간적 경험을 고집하고,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며, 하나님이 버린 사람들에 집착했을 때,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이 비참하게 죽었고, 하나님이 모욕을 당했습니다. 한국교회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들이 분쟁하고, 파산하며, 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종국에는 다 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죽고,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면서 말입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깨닫고 돌이키는 것. 그것뿐입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