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밝은 길
어릴 때 예배시간에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성도들은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습니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표시이자,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저도 힘을 다해 그 아멘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한국교회의 보편적 현상이었기 때문에, “번영신학”이 그렇게 빠르고 강력하게 유행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무사태평”과 “만사형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성지탈환을 목적으로 떠났던 소년십자군은 모두 노예로 팔렸습니다. 종교개혁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종교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신앙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와 테러의 희생양이 됩니다. ‘위도 10도’에 사는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오늘도 이슬람과의 극단적 갈등 속에 매순간이 생지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과 함께 미스바에 모여 제사하며 참회했습니다. 영적 대각성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블레셋 군대가 침략했습니다. 영적 각성이 민족번영 대신 민족말살로 이어질 순간입니다. 이 상황에서,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두렵고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블레셋과 싸우셨고, 이스라엘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무사태평과 만사형통이 아니라, 사망의 골짜기를 주님과 함께 통과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도깨비 방망이’나 ‘민중의 아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좁은 길’이자 ‘십자가의 삶’입니다. 예수를 몰랐다면 갈 이유가 없는 길이요, 당할 필요도 없는 고난이지요. 하지만 주님이 먼저 가신 길, 주님이 초대하신 길, 주님이 함께 가시는 길이기에, 오늘도 우리가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 길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갈 수 있으며, 그 길을 걸을 때만 성령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정녕, “하늘가는 밝은 길”입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