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에 “목사님들 이런 목회를 해 보세요”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장로님이 제시한 “건강한 교회를 위한 열두 가지 제안”이 중심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용서가 있는 교회 (2)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교회 (3)담임목사가 독주하지 않는 교회 (4)부교역자를 동역자로 대접하는 교회 (5)타교회와 교제하는 교회 (6)재정을 아껴쓰고 투명한 재정운영을 하는 교회 (7)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교제하는 교회 (8)성도를 그들의 동네 교회로 보내는 교회 (9)헌금을 강요하지 않는 교회 (10)가정생활을 보호하는 교회 (11)빚이 없고 화려하지 않은 교회 (12)생명을 아끼는 교회. 사실 이 내용들 중 특별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불행히도 이제는 특별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12가지 제안들이 “용서가 있는 교회”로 시작해서 “생명을 아끼는 교회”로 끝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2가지 제안”의 순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한 교회의 알파와 오메가가 용서와 생명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참된 것은 용서와 생명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용서와 함께 합니다. 사랑에서 용서가 분리될 때 그 사랑은 공허하고 상처를 줍니다. 동시에 사랑은 항상 생명을 동반합니다. 진정한 사랑 속에 생명은 약동합니다.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꿈꾸었던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첫 번째 성탄절 새벽 하늘에 나타난 천사들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사람들에겐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고 사람들 중에 평화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 땅에 영광과 평안이 자동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후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생명을 존중하고 원수를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고통스럽고 험한 삶이었지만 그 덕택에 영광과 평화가 이 땅에 가득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가 성탄절을 다시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사랑 가족들이여 오늘은 2011번째 성탄절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사람들은 다투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 빛과 소금으로서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잔치에 참석하신 우리 모두는 예수탄생의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이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