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1-12-18 스바냐의 교훈: 겸손

주사랑교회 0 2,290

저는 개인적으로 이단에 대해 관용적(?)인 편입니다. 교회사 공부를 통해 이단은 정통이나 주류종교의 타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기존 교회가 본질을 상실하고 세속화될 때 이런 변질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분리해 나가거나 혹은 강제로 쫓겨나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그룹이 이단으로 규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이단 발생의 일차적 책임이 기성교회에게 있으며 기성교회는 이단을 비난하는 대신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단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충고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단이 관용의 대상일 순 없습니다. 위의 경우처럼 억울하게 이단이 된 경우도 있지만 정말 악한 이단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한부종말론으로 사회를 극도로 긴장시킨 다미선교회 집단자살로 세상을 경악케 한 오대양 등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런 악한 이단들 배후에는 공통된 이념적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오만한 주장이 그것입니다. 요즘엔 “신천지”가 교계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엔 공개적으로 전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만희 총회장님만 성경의 예언을 온전히 풀 수 있는 보혜사입니다.” 이만희 외에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신천지 외에 구원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못된 이단인 것입니다. 진리와 가장 닮은 말은 무엇일까요? 성경적 교훈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기독교가 왜 진리의 종교일까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이런 질문에 근접한 답이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 <스바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를 이 도성에서 없애 버리겠다. 네가 다시는 나의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이다”(표준새번역3:11). 이 말씀은 이디오피아에 대한 예언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거만”이었습니다. 이 예언에 이어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의 예언이 이어집니다.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3:12). 분명 하나님의 관심은 ‘겸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거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타인을 무시하거나 군림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갈등과 폭력을 싫어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말을 아끼며 행동을 조심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무신론자가 될 수 없으며 동시에 오만하고 독선적인 종교인도 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성장과 승리보다 섬김과 나눔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신천지는 이단입니다. 지독한 종교적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불행한 일은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회 안에서 유사한 현상을 목격하는 현실입니다. 거대한 성전 앞에서 겸손의 혼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거친 구호 앞에서 겸손의 복음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교회 속에 들어온 세상 앞에서 겸손은 존재이유를 상실합니다. 주사랑교회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해야 할 힘든 유혹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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