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직업병일까요? 제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교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거리를 다니다보면 혹은 낯선 지역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주변에 교회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어느 곳을 가나 거의 예외 없이 주변에 멋진 교회 건물뿐만 아니라 건물마다 작은 교회들이 연이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도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면 가히 한국은 기독교국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주변에 교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교회들이 존재함에도 교회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에 그렇게 많은 교회가 생겼지만 즉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세상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로 인한 갈등과 폐해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교회를 향한 사회의 비판 심지어 교인들 스스로 교회에 대한 수치심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수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며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 결과물들 중 가장 근원적인 지적은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정작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정상적인 혹은 궁극적인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교인들 자신이 극심한 혼란 속에 있습니다. 교회건물은 천지에 가득하고 주변에는 교인들이 넘쳐나지만 교회가 본질을 잃고 방황하는 현실은 모두에게 아픔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신학자들은 이 장면이 교회탄생의 역사적 순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성령이 강림했을 때 나타난 최초의 증상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변화.” 다시 말하면 교회는 성령의 임재로 탄생하며 성령이 충만한 신자들은 가장 먼저 언어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방언이라고 명명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게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는 구절이 중요해 보입니다. 언어의 주체가 전에는 우리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성령입니다. 우리 몸의 혀와 입술이지만 이제는 성령의 뜻대로 사용됩니다.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다”는 구절도 주목해야 합니다. 언어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언어의 내용 목적 그리고 결과도 변합니다. 완전히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세속의 언어? 아니면 성령의 언어?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를 구별하는 결정적 척도입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