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0-11-07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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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군의 청년들이 봉은사 법당에서 예배를 드린 일이 일파만파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소위 “땅 밟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여로고성 함락을 위해 주위를 일곱 바퀴 돌았던 것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선교지에서 선교사들(단기선교팀 포함)이 선교지에 하나님 나라가 속히 도래하길 염원하며 이런 의례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국내에서도 타종교단체 특히 불교 사원이나 무속인들의 집 주위를 돌면서 이들의 종교행위가 중단되길 기도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의 절정으로 이번에 용감하고 신실한(?) 청년들이 법당 안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불상 앞에서 찬양을 부르면서 말이지요. 사실 이것은 가택침입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종교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 말대로 “막가자는 거지요.” 이번 일을 감행한 청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외에는 천국에 갈 방법이 없다는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불상은 우상이요 법당은 우상숭배의 현장이며 그 앞에서 절하는 이들은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방인들로 보였겠지요. 그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자각했겠지요. 이렇게 거룩한 일을 위해선 세상의 비난과 육체적 고통쯤은 순교자의 영성 십자가의 고난으로 감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겠지요. 어쩌면 목숨까지 주의 제단에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일사의 각오”로 봉은사를 향해 영웅적 발걸음을 옮겼겠지요. 이들의 신앙고백과 논리에 따르면 이들은 죄인이 아닌 영웅입니다. 이번엔 봉은사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비록 우리와 종교가 다르지만 엄연히 그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적법한 국민이며 이 나라에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법당을 짓고 예불을 드리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며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의 기독교인들이 사찰 안으로 들어와 이 자리를 저주하며 자신들끼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행동을 허락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와 이곳 주인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신앙마저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이것은 왜적의 침입으로 사찰이 파괴되던 것보다 더 기막힌 경험입니다. 정말 기독교인들은 왜구나 오랑캐 심지어 공산당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웃도 상식도 예의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과연 주님은 청년들의 행동에 박수를 쳤을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너희에게 큰 상이 있으리라”고 칭찬하며 대견해 하셨을까요? 글쎄요… 어린아이 세리 과부 창녀 같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 말씀하신 주님입니다. 로마의 신전에 불을 지르는 대신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판을 뒤집었던 분입니다.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끌 보다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물론 주님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명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으로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을 말입니다. 성령은 깡패가 아니며 예수님의 가르침도 무대뽀는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겸손과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무례한 기독교인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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