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1-05-22 하나님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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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딸만 셋이 있습니다. 팔불출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지만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제게도 아이들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밤마다 아이들이 잠든 방에 들릅니다. 지극한 평안 속에 곤하게 자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살며시 다가가 아이들의 얼굴에 뽀뽀를 하고 꼭 안아봅니다. 그러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뽀뽀하고 안을 수 있을까?” 조금만 더 크면 아빠의 그런 스킨십도 부담스러워하겠지요.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서운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한번 더 아이들을 꼭 안아봅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제가 집에 돌아오면 세 녀석이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지르다가 서로 먼저 저를 안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 경쟁에서 밀린 녀석은 분하고 억울해서 눈까지 흘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때에는 목욕 후 가운을 걸치고 나오다가 아빠를 발견하고는 음흉한 바바리맨처럼 자신들의 누드를 제 앞에 활짝 보여주고는 깔깔대며 웃어댔습니다. 아빠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빠만 보면 마냥 행복해 하는 녀석들을 보며 저는 또 순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녀석들이 내 앞에서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철없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 녀석들이 자라 사람 구실을 할까?” 하는 걱정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빠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새 잃어버리고 있는 아이들의 옛 모습에 마음이 허전해 짐을 느낍니다. 자기들의 아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빠를 무조건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뢰하는 녀석들 아빠라는 이유로 그 앞에서 벗은 모습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녀석들 녀석들의 그런 모습 때문에 황당하면서도 마냥 행복하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까 저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젠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역대상15장 마지막 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행복에 겨워 옷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춤추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동시에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 앞에서 왕이 체통을 잃었다고 핀잔을 주는 왕비 미갈의 모습이 함께 대치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아이처럼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으나 미갈의 눈에는 백성들 앞에서 춤추는 경망스런 왕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어린아이로?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체통에 집착하는 종교인으로? 아마 하나님의 마음도 저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아이들일뿐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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