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3년 4월 1주 (4.2)

주사랑교회 0 72

차례차례 피는꽃 

 

                                             도종환

 

어느날 갑자기 피는 꽃은 없습니다.

어떤 꽃이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준비하면서 핍니다.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그 꽃을 발견한 것뿐입니다.

봄 들판에 여린 꽃다지 한 송이도 겨우내 준비한 뒤에 꽃송이를 내밉니다. 

오랜 날을 추위와 목마름과 싸워 오면서도 때가 되어야 꽃송이를 내밉니다.

잿빛으로 죽어 있는 겨울 들판을 쉬지 않고 달려와 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알리고 난 뒤 

산수유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서 비슷한 크기,

똑같은 빛깔의 생강나무꽃이 덩달아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산수유꽃이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할 만큼 시간이 지난뒤에 비로소 꽃을 피웁니다.

산수유보다 더 진하고 강한 향기를 지닌 줄기와 꽃을 키워 갑니다.

진달래가 피었다고 해서 철쭉도 같이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꽃을 피웁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먼저 피고 난 뒤에 좀더 진한 빛깔의 분홍꽃을 피웁니다. 

진달래보다 늦게 꽃이 피었다고 진달래를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꽃을 피워도 되겠다고 생각할 때 꽃을 피우는 것 뿐입니다.

조팝나무꽃이 피었다고 싸리나무가 몸살을 앓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조팝나무는 봄이 절정에 이르는 4월 곡우 무렵에 짙은 향을 내뿜으며 피지만, 

싸리나무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야 꽃을 피웁니다. 

그렇다고 싸리나무가 보랏빛 꽃을 피우고 서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을 게으르고 못난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 할 뿐입니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 꽃을 피우는 꽃들이 모여 

이 나라 산천을 꽃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이 나라 들판이 사철 꽃향기로 가득하게 합니다. 

먼저 핀 꽃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늦게 꽃이 핀다고 조바심 내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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