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비
이어령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
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한강으로 흐를 만큼
황하를 채울 만큼
그리도 못 참을 슬픔이었느냐
창문을 닫아도 다시 걸어도
방안에 넘쳐나는 차가운 빗발
뭔가 말하고 싶어 덧문을 두드리는
둔한 목소리 그런데 이 무슨 일이냐,
시든 나뭇잎들은
네 눈물로 살아나 파란 눈을 뜨고
못생긴 들꽃들은 네 한숨으로 피어나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으로 빛살을 짓는다
얼마나 큰 기쁨으로 태어났으면
저리도 많은 빗방울들이
춤추는 캐스테네츠의 울림처럼
그리움에 목타는 목을 적시고
미어지는 가슴을 다시 뛰게 하더니
어느새 황홀한 무지개로 오느냐.
향기로운 비가 내린다
너 지금 거기에 살아있구나
표주박으로 은하의 강물을 떠서
잘 있다 잘 잔다 말하려고,
너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
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비야 향기로운 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