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2024년 9월 4주 (9.22)

주사랑교회 0 204

가을이 오면  

                          도종환

 

가을이 오면

가을이 와서 들판을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들이면

나도 대지의 빛깔로 나를 물들이리라

플라타너스 잎이 그러하듯

나도 내 영혼 가을 하늘에 맡기리라

 

가을이 오면

다시 연필로 시를 쓰리라

지워지지 않는 청색잉크 말고

썼다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용서로 천천히 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 같은 이를 사랑하리라

칸나같이 붉은 이 말고

들국화같이 연한 빛으로 가만히 나부끼는 이를

오래 사랑하리라

 

가을이 와서

한알의 사과가 겸허히 익고 있으면

타는 햇살과 비바람에도 감사하리라

사과나무처럼 잠시 눈을 감고 침묵하리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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