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은 우뚝하다
박노해
세계가 불타고 있다는 듯
때이른 폭염이 오고
세상이 비관에 휩싸인 듯
기나긴 장마가 오고
먹구름 인 무거운 일상에
천둥이 치고, 바다가 울고,
거센 비바람이 대지를 휩쓸고
언뜻, 빛이 비춰올 때
폭풍우 속에서도 수국꽃은 우뚝하다
장맛비 속에서도 백일홍은 의연하다
백합꽃도 초롱꽃도 꽃댕강도 바늘꽃도
그 가늘고 여린 몸 흔들며 피어나고 있다
장마도 폭풍도 불볕도 지나간다고
그것들이 없이는 강해질 수 없다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은 다
온몸으로 견뎌내며 태어나는 거라고
난폭한 자들은 악을 쌓으며 자멸해가고
비바람 속에서도 여름 꽃은 우뚝하니
이 아침, 꽃들이 전하는 격려를 담아
그대의 안부를 타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