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교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딤전 2: 12~15)

디모데전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디모데전서 2장 12~15절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2~15)

 

교회는 오랫동안 이 구절을 근거로 교회 안에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했습니다. 지금도 천주교와 장로교 합동, 고신교단등은 이 구절을 근거로 여성을 지도적인 성직자 (신부, 목사)로 임명하지 않습니다. 

 

논란이 많다는 것은 찬성과 반대에 합당한 근거가 있고 그 대립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디모데전서 설교 중에 그 결론을 전하려 생각했다 설교보다 글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에 관한 많은 논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울 전문가이신 신약학자 최갑종 교수님의 <사도 바울은 여성안수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가?> 라는 논문이 가장 설득력있다고 판단됩니다. 이 논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제 생각을 대신합니다. 

 

- 바울은 디모데전서 2:12-15에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 문제가 되고 있는 12절의 “여자가 남자들을 가르치거나 주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의 정확한 문법적인 의미는 바울이 언제 어디서든 항구적으로 여자가 남자들을 가르치거나 주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 현재 능동태 직설법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리킨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대상은 여성 일반 전체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정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기혼여성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본문에서 여성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헬라어 단어, “구내”(γυν?)가 일반적으로 기혼여성을 가리키고 있으며(딛 1:6; 딤전 3:2,12; 5:19), 서로 부부관계에 있었던 아담과 이브를 등장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혼여성에게 직접 관련된 해산 문제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에베소교회 여성도들에게 있었던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임을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이 디모데에게 여성도들로 하여금 일절 순종하므로 종용히 배우도록 할 것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사실로부터, 에베소교회의 여성들 가운데 거짓된 교훈에 빠져 교회 안에서까지 남자를 잘 못 가르치려고 하거나 남자를 주관하려는 자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에 거짓된 교훈에 대한 경계가 많이 나타나고 있고(딤전 1:3-7, 19-20; 4:1-3; 6:3-5,20), 그리고 여자에 대한 교훈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이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도행전 19:28-37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에베소 지역의 여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여신 아데미 제식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에베소교회의 기혼 여성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바울이 12절에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한 다음, 13절 이하에서 이유 접속사와 함께 구약 창세기에 있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담이 아닌 여자 이브가 꾀임을 받고 죄에 빠진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당시 에베소교회 여 성도들이, 마치 이브가 아담을 가르칠 위치와 능력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먼저 유혹을 받아 아담을 죄에 빠지게 한 것처럼, 남편이나 다른 남자를 가르칠 위치와 능력도 받지 못했으면서도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본문이 에베소교회 여성도들 중에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교육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남편이나 다른 남자를 그릇된 길로 오도하려고 하는 여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디모데전서 2:12-15의 본문을 에베소교회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여성도들에게도 바울이 그와 꼭 같이 적용을 시켜서, 여자는 무조건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바울이 브리스길라로 하여 아볼로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한 사실(행 19:24-26)과 관련해서 볼 때 스스로 자기 모순을 범하고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여성 사역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로마서 16:1-2에서 그는 겐거리아교회의 일꾼 뵈뵈를 로마교회에 천거하면서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뵈뵈가 여성인 점은 뵈뵈를 가리켜 “우리 자매”라고 부르고 이는 점에서 분명하다. 우리말로 뵈뵈에게 붙여진 “겐거리아 교회의 일꾼”이란 호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말 “디아코노스”(δι?κονο?)는 일꾼(servant), 조력자(helper), 집사(deacon), 사역자(minister)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16:3-5에서 브리스가와 그녀의 남편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브리스가를 그녀의 남편보다 먼저 말하고 있다. 이것은 브리스가가 자기 남편인 아굴라보다도 더 적극적인 혹은 더 중요한 사역을 하였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바울이 브리스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가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와(롬 16:20), 디도(고후 8:23)에게 동일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브리스가가 사실상 바울과 함께 전도, 가르침, 설교, 예언 등의 복음 사역자로 일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그들의 가정에 교회를 설립하였다고 하는 점은(롬 16:5; 고전 16:19) 사실상 브리스가가 목회사역을 하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누가가 사도행전 18:26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로가 아블로를 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가르쳤다고 하는 사실도 브리스가가 복음전파 및 목회사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바울은 로마서 16:7에서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친척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언급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이 서로 부부관계에 있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 부부가 다 같이 “사도”로 호칭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지 말라는 교훈으로부터 바울이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 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성도들에게 예배에서 이미 기도나 예언에 참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바울의 선교사역에 여러 여성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잠잠하면서 어떻게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을 할 수 있으며, 바울과 함께 복음의 동역자가 되거나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질문. 남자인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여자인 이브가 나중에 아담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으며,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었기 때문에,이브의 후손인 여자가 목사가 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느냐?

   

■답변: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이브가 아담을 통해 배필로 지음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이브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창세기 1:26-28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똑같은 권한과 사명을 받았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이새의 아들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먼저 난 것이 필연적으로 축복의 우선권과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여자가 남자의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남자에 대한 여자의 피종속권(被從屬權)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종종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배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49:25; 출 18:4; 신 33:7,26,29).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나타나 있는 여자에 대한 뱀의 유혹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남자인 아담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유혹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타락이전에는 이브가 아담에게 종속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타락이 아담과 이브 사이에 있었던 사랑과 조화의 관계를 갈등과 불평등의 종속관계로 바꾸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이브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하였지만, 범죄한 이후에는 선악과를 먹게 된 책임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창 3:12)에게 돌렸다. 이브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남편으로부터 다스림을 받게 되었고”, 거기에다 더 많은 해산의 고통을 지게 되었다(창 3:16). 이처럼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불평등과 갈등 및 종속관계는 하나님이 세우신 본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의 타락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갈등과 종속관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타락의 문제가 해결될 경우 언제든지 해소될 수 있는 잠정적인 것을 뜻한다. 그럼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 여자의 차별 없이 “새로운 창조”가 되었고(고후 5:17), 인종과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없는 새 창조시대, 새 언약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여전히 옛 창조 시대에 타락을 통하여 주어진 것을 근거로 하여 여성의 사역을 제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문.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심으로써, 설사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본질과 신분에 있어서 남녀가 서로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기능에 있어서는 이미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따라서 남자에게 주어지는 목사의 역할을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

 

■답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의 직분이 남자에게만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 옛 창조질서에서는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창조질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목사의 주된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와 교회의 권징과 성찬의 집례 및 봉사와 선교와 교육 등이라고 할 때, 이들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창조질서에 속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본질(신분)과 직능은, 나무와 열매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엄격하게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분과 대통령의 직능이 어떻게 서로 나누어질 수 있는가? 대통령의 신분이 없으면 대통령의 직능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편으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의 신분으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어떤 직능은 남자에게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결국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자의 신분을 제한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은 오순절 성령이 남녀의 구분 없이 꼭 같이 주어졌고, 남녀가 꼭 같이 예언하고, 기도하고, 꼭 같이 복음전파사역에 참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남녀의 직능상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오늘 교회 밖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과학, 군사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철폐하고 있다. 그런데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는데 사회보다 더 앞장을 서서 선도해 나가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도 않는 성직에 있어서 남녀의 직능상의 차별을 계속 두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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