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정의는 분명합니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언제나 모험이고 도박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어디까지 그 결과를 확인할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할 때
무엇이 사랑인가라는 기준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이 어떤 결과, 어떤 현실이 될지는 모르지요.
여기에 진짜 갈등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이 이어지는 이사야서 42장 8,9절입니다.
8.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상한 갈대를 꺽지않고,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사랑이
정의라는 것을 계시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라는 빛을 주셔서
흑암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와 정의인 사랑을 주셨고
세상에 그 사랑을 행하는 관계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정의인 사랑을 행합니다.
그러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 답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정의를 행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영광과 찬송으로 삼으신다는 겁니다.
너희가 행한 정의가 아무 쓸데없는 것, 허무한 것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광과 찬송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정의를 행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던 키에르케고르가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믿음이란 말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가장 궁극적인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정의, 사랑으로 행한 모든 것을
그 분의 영광과 찬송으로 만드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가 짓밟히고 소용없이 보이고 결과를 확인하지 못해도, 용기와 희망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