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대머리를 놀리지 말라

주사랑교회 0 1,684

5년전 <대머리를 놀리지 말라>는 설교를 한 적 있다.

엘리사 선지자가 벧엘로 가려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작은 아이들이 몰려들어 엘리사를 조롱했다.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그러자 화가 난 선지자는 아이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했고 하나님이 암 곰 두마리를 보내 엘리사를 대머리라 놀렸던 아이들 마흔 두명을 물어뜯었다. 열왕기하 2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째 얘기가 좀 이상하다.
애들이 장난 좀 쳤기로 점잖은 선지자가 성질내며 저주를 하나, 거기에 맞장구쳐서 곰을 보내신 하나님은 도대체 뭐야, 선지자와 하나님이 동심도 이해 못하고 너무 옹졸하고 잔인하다. 웃으면서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결말로 끝나는 잔혹동화같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풀어야할 오해가 몇가지 있다.
우선, 작은 아이들이라고 번역된 구절.
우리는 작은 아이라면 초등학생 정도 되는 어린이들을 떠올리지만 여기서 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어린이 뿐 아니라 청년이란 뜻도 있다.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에게 사용된 단어가 '나아르'였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온 다윗을 사람들이 '나아르'라고 불렀다. 또 ‘작은’이라는 말도 신체적으로 작다는 의미보다 하챦은, 시시한 이런 뜻이다. 그러니까 '작은 아이들'로 번역된 이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아니라 시시껄렁한 동네 청년들에 가깝다.
다음으로 곰이 나타나 아이들을 찢었다는 기록. 곰이 아이들을 찢어서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개역개정성경은 찢었다고 번역했고 히브리 성경 원문에도 죽었다는 말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곰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 42명이다. 곰 한마리가 21명을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곰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잡아 먹히려고 그 자리에 가만 있지는 않았을거다. 아마도 이 사건은 좁은 산길에서 벌어졌고 사람들이 곰이 나타나자 우왕좌왕 하다 넘어지고 그러면서 곰들에게 물리고 상처입은 것 같다.
나는 이 사건을 불량한 동네 청년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하다 그 벌로 42명이 곰에게 물려서 다친 사건으로 이해한다.
젊은이들은 엘리사 선지자를 대머리라고 놀렸다. 고대에는 열병이나 피부질환의 후유증으로 대머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문둥병으로 의심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신체적인 특징은 금방 놀림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놀리며 재미있어하고, 놀림받는 사람에게 있는 약점이 나에겐 없다는데서 우월감을 느낀다. 그 재미와 우월감만큼 어쩔 수 없는 걸로 놀림을 받는 사람은 수치심, 모멸감을 느낀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은 대머리가 아니었기때문에 엘리사 선지자를 놀릴 수 있었다. 처음엔 한두명이었겠지만 점점 그 숫자가 많아졌다. 그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한 마흔 두명이다. 사십명 넘은 사람이 한 사람을 놀렸다. 42대 1에서 1이 된 사람은 외롭고 비참하지만 42에 속한 사람은 재밌을 뿐 아니라 안전하다. 그래서 스스로 그 재미를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왜, 곰을 보내 이 사람들을 물어뜯게 하셨을까? 다수 편에 속해 소수를 조롱하는 사람은 절대 스스로 그 폭력을 중지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을 놀리는 일을 죄라 생각하지 않고,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숫자로 정당성을 갖는다. 그래서 집단의 폭력은 그냥 두면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발전한다. 하나님은 곰을 보내서라도 이 집단의 폭력을 중지시켰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선지자를 대머리라고 놀린 사람들이 벌받은 사건이 아니다. 대머리가 아닌 다수가 자기와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진 한 사람을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만든 차별과 폭력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해 징벌하고 중지시킨 사건이다.

소수 약자를 괴롭히지 말라. 하나님께서 곰을 보내서라도 물어 뜯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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