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이 시대의 마리아

주사랑교회 0 985

존 콜리어 (John Collier)의 <수태고지>

존 콜리어는 미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화가 겸 조각가다.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톨릭 기념관에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톨릭 신자인 화가는 전통대로 수태고지를 그렸다. 성경과 백합, 천사. 이 그림에서 전통을 벗어나는 건 마리아 뿐이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듯한 십대 소녀 마리아. 오랫동안 정숙한 귀부인으로 그려졌던 마리아와 매우 다르다.
누가복음은 마리아를 ‘요셉과 약혼한 처녀’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과 당시 관습을 참고하면 마리아는 열다섯에서 열여덟 정도의 소녀였을 것이다. 존 콜리어는 이걸 근거로 마리아를 십대 소녀로 묘사했다. 그런데 마리아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십대 소녀로 그리자 마리아를 성숙한 성인 여성으로 등장시킨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과 불길함이 생긴다.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열여덟 딸을 연상했다.
학교다니는 딸이 뜻하지 않은 임신을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딸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 '아니야,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되지, 그런 일이 생길리 없어' 머리 속 불길한 상상을 지워버렸다. 내가 지운 그 상상이 임신을 고지받은 마리아에겐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마리아다. 그녀들에게 '주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이게 화가가 이 그림을 이유 아니었을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