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교회의 다름

주사랑교회 0 1,270

지난 9월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서울여대 박진규 교수님의 글입니다.

교회의 다름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좋은 글, 일독을 권합니다.  

 

7개월 넘게 코로나 국면이 이어지면서 “교회는 다르다”는 주장이 거듭 들려온다. 3월 말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신천지발 대규모 감염 이후, 비대면 예배 전환을 꺼리는 교계 분위기와 산발적인 교회 집단감염으로 개신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마치 교회에 집단감염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신천지 여론을 악용”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며 “신천지와 교회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 발언은 지난달 27일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에게서 나왔다. 사랑제일교회 신도 수백명이 확진되고, 방역수칙을 소홀히 한 현장예배와 소모임으로 인한 감염 사례가 전국에서 보고되면서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가운데, 청와대가 개신교 지도자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그는 “(중앙집권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라며 개신교를 가톨릭, 불교와 구분했다. 또 “신앙을 생명같이 여기는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치”이므로 현장예배를 금지한 정책은 교회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폈다.

미디어와 종교의 접점을 연구하는 필자는 평소 한국 교회가 세속사회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는 점점 더 고립·단절된 게토가 되고 있다. 황 전 대표와 김 회장의 발언은 개신교의 ‘다름’을 세가지 차원으로 주장한다. 개신교는 정통 교단으로서 ‘이단’과 다르고, 개신교 조직 구조는 태생적으로 여타 종교와 다르며, 목숨과 맞먹을 개신교 의례의 가치는 세속적 비즈니스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 내부의 언어와 논리가 세상의 그것과 얼마나 유리되어 있으며, 유례없는 감염병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대중에게 그 언어가 어떻게 들릴지 헤아리는 감각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고발한다.

이들의 주장을 일반 사회의 규범과 논리로 다시 읽어보자. 첫째, 코로나 국면 세속사회에서 신천지와 개신교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신천지는 이단성과 반사회적 행위로 개신교의 경계 대상이었지만, 코로나 이전 대중에겐 수많은 기독교 파생 신흥종교 중 하나에 불과했다. 31번 확진자로 시작된 대확산 이후에도 신천지의 반사회성은 방역규칙 위반, 역학조사 비협조, 거짓말, 책임회피 등에 집중되었지 교리나 교주 등 종교 차원의 이슈는 그들의 일탈을 설명하는 주변적 정보에 불과했다. 애초 개신교가 말하는 이단성은 세속의 언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방역당국이 경계하는 ‘밀접’ ‘밀집’을 포기 못 하는 고집스러운 문화로 인한 위험성은 개신교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일 뿐이다.

둘째, 중앙집권적 위계로 방역에 효과적인 가톨릭, 불교와 개신교의 구조는 다르다는 주장 역시 대중에게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개교회중심주의라는 구조에 더해 수백개 교단으로 쪼개져 갈등하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은 방역의 어려움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이 종교집단이 얼마나 통제 불가능하고 독선적인지를 뒷받침할 뿐이다. 특히 교회가 사업장, 영업장과 다르다는 세번째 주장은 세상 읽기에 무능한 개신교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현장예배 금지의 부당성을 설명하려고 언급한 “사업장”과 “영업장”은 팬데믹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소상공인, 골목상권, 중소기업을 상징한다. 세속적인 비즈니스로만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서민의 생존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가치를 지녔다는 현장예배와 비교됨으로써, 이들의 고통과 절망은 돈벌이에만 급급한 자들의 고상치 못한 푸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개신교에서 ‘다름’은 중요한 가치다. 교회와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거룩’은 구별됨, 즉 다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다름이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성서는 예수 부활 뒤 제자들의 첫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고 기록한다. 그 호감은 당시 로마제국주의 아래 지배질서와는 전혀 다른 자기 부인, 희생, 정의, 돌봄, 공유, 사랑의 가치를 삶으로 드러낸 대안적 공동체였기에 가능했다고 가르친다. 어쩌면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세상을 향해 교회의 다름을 제대로 보여줄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61103.html?_fr=mt5#csidx877080542507da9bd66d42ebde34561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