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3.07.07. 당신은 온유하십니까?

주사랑교회 0 1,771

당신은 온유하십니까?

저는 성경의 용어 중, 온유란 낱말을 참 좋아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강조되어 온 사랑이나 믿음에 비해, 온유는 신자들 안에서 비교적 생소한 용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온유가 성경의 핵심적 단어 중 하나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에 관한 말씀에서 “온유한 자”가 등장합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서 바울은 참된 사랑의 특징 중 하나로, 갈라디아서5장에선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각각 온유를 언급합니다. “사랑은 온유하며.”“오직 성령의 열매는…온유와…” 예수님과 바울은 온유의 중요성을 간파했습니다. 온유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과 기독교사상의 중심을 구성하는 결정적 덕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온유(溫柔)는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시체는 차갑고 딱딱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산 사람의 몸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유는 그 몸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신선한 산소와 따뜻한 피가 원활히 흐르기 때문입니다. 몸에 생명이 있는 한, 체온은 따뜻하게 유지되고 피부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합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며,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이 천국, 성령, 사랑을 온유와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점점 더 온유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증거인 따뜻함과 부드러움의 영역은 축소되고, 죽음의 증상인 차가움과 딱딱함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 대신 차갑고 딱딱한 벽돌이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 대신 차갑고 딱딱한 동전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 대신 차갑고 딱딱한 총과 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 대신 차갑고 딱딱한 명문대 졸업장이 학생들의 미래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 대신 차갑고 딱딱한 외과의사의 칼이 미의 기준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생명으로 충만해야 할 성전, 시장, 정부, 학교, 병원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란 주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땅은 생명을 지닌 존재들에 의해 소유되고 사용되고 보존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이 차갑고 딱딱한 죽음의 세상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의 세상으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인간에게“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읽어야 합니다. 정녕, “온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세상을 살릴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온유”해야 합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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