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씨름하라 ”나는 이 땅의 교회 안팎을 가파르게 행군하거나 노량으로 바장이는 중에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 정밀하게 독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을 얻는 사람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철학자 김영민의 신작 <당신들의 기독교> 중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신앙의 본질을 지적인 차원에 국한시킨 김영민의 입장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 구절에 담긴 구도자적 진지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지적 부정직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거칠게 반격할 근거와 용기도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단히 존중합니다. 일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은 ‘성경” 대신 성서’라고 표현하는 이들을 불경스런 자유주의자로 경멸하기도 합니다. 성경공부 성경통독 성경암송은 한국교회가 힘을 다해 확립한 신앙생활의 요체요 목회의 중심내용입니다. 그러나 김영민의 표현처럼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 정밀하게 독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을 얻는” 구도자적 태도와 신앙적 결실이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질보다 양으로 경도되고 그렇게 습득된 지식이 실천으로 귀결되지 못한 것은 자명한 현실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집사 빌립과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 간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내시는 구약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난 빌립은 성경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내시는 설명해주는 이가 없어 이해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결국 빌립은 내시가 읽던 성경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두 사람 간에 성경에 대한 불꽃 튀는 신학적 담론이 진행된 것입니다. 복음전도자로서 빌립의 학문적 탁월함이 진가를 발휘했고 결국 이교도였던 내시가 성경적 진리를 깨닫고 스스로 세례를 요청했습니다.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 정밀하게 독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을 얻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경적 진리에 대한 정직하고 진지한 탐구를 통해 신앙을 얻는 사람은 정말 “신자”가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서적 감동이나 신비적 체험만 의지해 형성된 신앙은 단순한 지적 도전에도 요동하고 심지어 붕괴됩니다. 정서적 감동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고 신비적 체험은 늘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한 신앙은 항상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진리에 대한 혹독한 지적 싸움을 통과한(물론 이 싸움은 평생동안 지속되어야 하지만) 후에 터득한 깨달음과 확신에 근거한 신앙은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주사랑교회가 그렇게 성경의 도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구도자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