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2-07-01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

주사랑교회 0 1,409

.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지면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사고가 터지면 자동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이어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동시에 사건의 책임을 물을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그들 때문에 억울하게 낭패를 당했다고 항의할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 입에선 불평이 때로는 욕설마저 거침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불평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결코 권장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늘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불평 대신 기도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황당한 상황에서 변명 대신 침묵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억울한 상황에서 원망 대신 호탕하게 웃던 때도 있었습니다. 속상한 상황에서 욕설 대신 찬송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던 상황에서 고함 대신 말씀을 읽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때는 제가 영적으로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말 그대로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였습니다. 새벽마다 불을 토하듯 기도하며 살 때였습니다. 몸은 피곤으로 무거웠지만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였습니다. 성경에서 저에게 가장 도전이 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새벽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막1:35). 성경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배의 고물에서 깊이 잠든 모습에서 예수님의 육신이 얼마나 피곤했는지를 단적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침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독대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셨고 육신은 파김치였지만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고통과 인간적 상처를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 안에서 피곤한 모습을 봅니다. 육신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우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불이 켜진 세상에서 정글보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속에서 어떻게 멀쩡하게 살 수 있겠습니다. 어느새 인간성이 상실되고 시나브로 인격이 증발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다른 차원의 삶이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특권입니다. Let us try!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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