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2-03-03 편견의 성전을 허물라

주사랑교회 0 1,552

나이가 들수록 걱정 되는 것 하나는 “내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면 어쩌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의 농도가 짙어가고 읽은 책의 수가 늘어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에는 세상에 대한 제 나름의 평가기준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저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이 시대의 강력한 편견 혹은 선입견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사람들은 “집안 꼴이 저 모양이니 애들이 저 지경이 되지.”라고 판단해버립니다. 역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을 만나면 “개천에서 용났네!”하며 의아해합니다. “중국산은 모조리 불량품이고 미제는 다 최고다. 조폭은 온통 전라도 출신이며 양반들은 다 경상도 사람이다. 진보는 친북좌파고 보수는 애국자다. 장로교 신자는 합리적이고 오순절파는 광신자다. 대형교회는 성공사례고 개척교회는 실패의 상징이다”란 생각들도 이 시대의 일반적인 편견들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편견은 강력합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란 편견이 대표적입니다. 그 편견 때문에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으로 예수를 보고도 그가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나사렛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 아이들 세리 이방인 문등병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지독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었지만 사회적 편견 때문에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역으로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이런 편견들에 담대히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이 나사렛 출신이었지만 “선한 것”이 되셨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온갖 종류의 사회적 약자들과 접촉했고 사회적 금기사항들을 깨뜨렸습니다. 모세율법과 성경에 대한 기존의 해석도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란 선언들 모두 당시의 편견과 선입관에 대한 무서운 도전이었습니다. 심지어 초대교회에는 성령이 이방인들 위에 임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편견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은 쉬지 않고 그 성전을 허무셨습니다. 주사랑교회가 “본질을 추구”할 때 그 본질은 주님의 뜻을 구하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불완전하고 왜곡된 편견 대신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의 그릇된 편견의 담을 허물고 샬롬의 공동체 상생의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이 동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파와 지성적 신자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믿은 사람과 초신자도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정치적 신학적 성향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어선 안 됩니다. 다르지만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 엄연히 차이가 존재하지만 인내 속에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공동체 성령 안에서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고 사랑 안에서 타자를 용납하며 말씀 안에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주사랑교회이길 소망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행10:47). 가슴에 새길 말씀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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