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1-04-17 진리를 위해 고난마저 당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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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기자는 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예민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잠시 고민했으나 저의 평소 생각들을 정직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다음날 기자는 저의 답변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기사가 나가가 저는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속이 후련했다”라는 친구의 격려에서부터 “교수님 괜찮으시겠어요?”라는 걱정의 목소리까지. 심지어 총장님 앞으로 저를 비방하는 이메일이 두 차례나 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총장님께서 걱정할 것 없다며 위로하셨지만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며칠 후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기자들도 여럿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날 행사는 이미 기독교매체를 통해 광고가 되었고 행사 당일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주제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 다음 날 여러 일간신문들과 인터넷 매체에 강연관련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섬겼던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격려와 축하의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관련 신문사에서 저의 글을 자의적으로 인용하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이단연구가는 저희 학교에 확인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몇 주 동안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히 사람들 앞에서 떠들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분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청중과 언론의 태도에도 속이 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휘둘리다 억울한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심적으로 위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나의 삶과 실천이 진리에 거한 것이라면 억울함과 오해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의 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육체적 고통이 무서웠다면 주님이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의 길에 질겁했다면 어떻게 베드로가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 절망했다면 어떻게 바울이 세상을 뒤흔든 사도요 전도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부끄러운 잘못과 죄로 세상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지극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주님의 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축복의 이유가 됩니다. 저도 진리를 위해서라면 주님과 함께 고난을 감수하겠습니다. 주사랑교회 또한 진리 앞에 당당하며 진리를 위해 십자가를 당당하게 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며 그렇게 다짐하고 싶습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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