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5병2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는 성인남자들만 5천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열광했고 많은 추종자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신들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따르라고 도전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부자였던 청년관원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좋지만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열광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노력을 합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공부하고 심지어 필사까지 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고 기독교방송을 청취하며 인터넷까지 검색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 및 신학서적을 탐독하고 각종 세미나에도 참석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말씀을 듣는 것은 프로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는 아마추어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모이지만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뛰는 가슴으로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지식은 강의와 실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습은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강의를 통해 이론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은 후에는 반드시 실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귀로 들은 내용을 몸으로 연습함으로써 머리에 갇혀있던 추상적인 지식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실현될 수 있습니다. 수술방법에 대한 강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손으로 직접 임상을 해보지 않으면 결코 실력 있는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수영선수가 수영방법을 강의해도 우리가 직접 물속에서 연습하지 않으면 결코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그렇게 습득되고 그렇게 실력과 능력이 됩니다. 마태복음7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반석 위에 지은 집이 튼튼하고 안전하지요. 마찬가지로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렇게 집을 짓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시몬의 다른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반석이란 뜻이지요. 비록 그는 제자로서 많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주님을 배반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려 애쓴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그물을 던지라 했을 때 심지어 물 위를 걸으라 했을 때 그는 그물을 던졌고 물위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 런 실천을 통해 그는 주님을 몸으로 알았으며 그 지식을 정확히 활용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얻은 베드로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앎은 그렇게 터득됩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