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1995년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17년이 지났네요. 정신없이 살다보니 살아 있는 사람도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거의 잊고 삽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일을 비롯한 특별한 날에야 겨우 기억을 더듬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날 꿈속에서 아버지가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여전히 병환 중이라 몸은 불편하셨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저희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개척교회가 부흥하여 사람과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는 회중석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교회를 둘러보셨습니다. 지난주에 병원에 계신 장인어른을 뵙고 왔습니다. 뇌수술 후 중환자로 누워 계신지 벌써 6개월째입니다.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 계셨고 이후 많이 호전되어 요양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다시 상태가 악화되어 준중환자실로 옮기셨습니다. 너무 건강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아마추어 배드민턴 선수셨습니다. 매일 산행을 하셨고 장신의 미남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씀도 못하시고 몸의 근육이 다 풀렸습니다.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들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이상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거의 40년 가까이 불러온 이름입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의 이 첫 문장이 요즘 저의 가슴을 심하게 흔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그 이름이 축복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분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장인어른이 쓰러지기 전까지 그분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분은 떠나고 한분은 사경을 헤매는 지금 두 분은 하늘이 제게 주신 위대한 축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이 아버지란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여성신학자들에게 혼이 나도 좋습니다. 내게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그분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너무 고맙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제가 누군가의 아버지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가 내게 못 다했던 사랑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채우고 떠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가 내게 축복이었듯이 나도 내 아이들에게 축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동시에 내가 하나님()아버지를 찾았듯이 내 아이들도 그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나님()아버지가 내게 가장 큰 은혜였듯이 내 아이들에게도 가장 큰 은혜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네요. 남은 세월 동안 하나님()아버지와 더 깊은 사랑을 나눠야겠습니다. 동시에 아버지로서 내 자식들에게 더 큰 사랑을 주어야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집니다.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