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지나며 예수님의 사역은 온통 기적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통해 많은 병자들이 치료되는 장면들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불치병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달려 나와 눈물의 하소연을 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치료되는 현상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이해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런 치유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동일한 성경을 읽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치료자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신유를 포함한 기적은 오늘날 교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적의 체험을 흥분 속에 간증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체험을 망상과 기만으로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적을 기대하며 기도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행동을 미신과 광신으로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변에는 기적을 기대하며 십자가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치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사람 경제적 파산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사람 무너지는 가정 앞에서 정신 줄을 놓은 사람 목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 절망하는 사람 신앙적 혼란 속에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람 아니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이 가득 합니다. 그들이 때로는 울부짖으며 때로는 탄식과 신음 속에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 삶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학자들의 설명은 정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목사들의 설교는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단지 사색의 대상 역사적 기록 혹은 종교적 수사일 뿐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사기”에 불과합니다. 사색 속의 하나님이 현실 속에서 확인될 수 없다면 역사적 기록이 현재적 체험으로 지속될 수 없다면 종교적 수사가 체험적 고백으로 승화될 수 없다면 그것은 “거대한 음모”일 뿐입니다. 한계상황에서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없는 종교 그 구원을 몸으로 체험할 수 없는 신학 그 체험을 고백할 수 없는 교회는 “성령을 훼방하는 세력”입니다. 부활절을 향한 40일의 영적 순례 끝에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종교 체험할 수 있는 신학 그리고 고백할 수 있는 교회로 부활하길 소망합니다. 정말 간절히… 배덕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