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4.08.31. 한국교회여, 자기 자신과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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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자기 자신과 싸우라!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성전청결사건은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한다. 공관복음은 그 사건을 예수 생애의 끝자락에 위치하지만, 요한복음에선 예수 사역의 서두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것이 더 정확한 기록인 모르겠다. 비평학자들의 지배적 입장도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이 예수 사역의 서두 혹은 말미에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마치 이 사건은 예수 생애의 알파와 오메가처럼 보인다.
이 사건을 살펴보면, 예수는 성전이나 성전제사가 아니라, 성전에서 영업하던 상인들 때문에 극단적으로 분노했다. 상인들은 성전에서 제물로 사용할 짐승들을 판매했다. 이 짐승들은 성전제사에서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이것들을 성전에서 구입할 수 있었기에, 제사지내러 온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필요했고 또 편리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 사업은 번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분노했다.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로 타락했다며 말이다.
평소에 아이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창녀나 죄인들마저 친절하게 대했던 예수께서 이 날은 광인처럼 흥분하셨다.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고, 짐승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너무나 낯선 예수의 모습이다. 성경은 성전에 대한 그의 지나친 사랑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기록한다. 이런 성경의 기록은 타락한 성전을 개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동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예수가 죽을 정도로, 예수의 죽음이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예수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성전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타락이다. 예수의 관점에서, 성전타락의 일차적 원인은 종교와 자본의 유착이다. 양자가 필요와 편리로 결합할 때, 가장 거룩하고 순결해야 할 종교마저 순식간에 타락하고 변질된다. 그렇게 종교가 타락하면, 세상은 자신을 구원할 결정적 수단을 잃게 되고, 세상의 궁극적 희망은 사라진다. 그래서 예수는 목숨까지 희생하며 저항했고, 종교는 예수까지 죽일 만큼 그것에 집착했다.
이런 성경의 기록은 교회사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었고, 지금도 현실로 엄연히 존재한다. 교황의 역사가 수많은 암살과 음모로 점철된 것도 종교와 자본의 유착 때문이다. 신앙과 돈이 부정적으로 결합했을 때, 영성의 본산인 수도원마저 개혁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내적 분쟁 속에 몰락하는 이유도 맘몬이 교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목사가 돈맛을 알면 교회마저 팔아먹고, 신학자가 돈에 눈이 멀면 예수도 못 알아본다. 교회가 돈독이 오르면, 이단과도 동침한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교인수의 급증과 교회건축의 붐을 “대부흥”이라고 기뻐하며 흥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흥”이 아니라, “대변질”로 판명되었다. 돈에 굶주린 사람들이 몰려들어, 돈을 위해 열광하다, 돈 때문에 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생사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과 말이다. 그렇게 싸우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싸워야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개혁, 바로 아마겟돈의 전쟁이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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