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3.11.17. 추수감사절입니다.

주사랑교회 0 1,394

추수감사절입니다

가을비에 젖은 채 길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 잎이 떨어져 쓸쓸한 나무들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눈부시게 파란 빛으로 높이 떠 있는 청명한 하늘, 그 아래서 어깨를 움츠리고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올해의 가을마저 짙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이미 11월의 반환점을 돈 오늘, 우리교회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낙엽, 바람, 하늘, 그리고 사람을 보면서,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음을 깨닫습니다. 시공의 절묘한 변화를 목도하면서, 저의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어느 새 푸른색을 잃고, 가지에서 떨어져, 찬 바닥에서 뒹구는 낙엽들을 보면서, 생명 안에 그 끝이 내재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이렇게 40대 중반이 되었음에도, 생명의 끝을 잊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쾌락, 성공, 상승이 영원할 것처럼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한없이 기고만장했습니다. 역으로, 현재의 고통, 실패, 추락에 끝이 없으리라 확신하며, 철저히 절망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떨어져 굴러가는 빛바랜 잎사귀를 보며, 시간과 생명에 끝이 있음을 목격합니다. 늦가을에야 깨닫는 삶의 지혜입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가을 저녁에 하늘은 눈부시게 파란 빛입니다. 그 하늘이 늘 제 머리 위에 있었지만, 그것의 존재를 잊고 살았습니다. 발밑의 검정색 아스팔트와 회색빛 보도블록, 주변의 차가운 콘크리트건물들, 그리고 무섭게 달려가는 철재 자동차들에 온통 마음과 눈이 고정되어, 그렇게 높고 장엄하며 청명한 하늘은 까맣게 잊고 산 것입니다. 그랬기에 저의 감정은 돌덩이처럼 차갑고, 저의 영성은 쇳덩이처럼 딱딱해졌습니다. 늦었지만, 가을 하늘을 바라보니,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늦가을에 체험하는 성스러움입니다.
앙상해진 가로수 밑에서 한 남자가 어깨를 움츠리고 걷습니다. 날은 어둡고 추워지는데,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나봅니다. 움츠러든 어깨가 더욱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제 앞에 그렇게 걸어간 사람들이 참 많았겠지요. 그런데 왜 이제야 그 모습이 제 눈에 보일까요? 늦었지만, 올해가 다 가기 전, 그런 뒷모습을 보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곁에 다가가 그 쓸쓸한 어깨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호빵 하나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늦가을에 느껴보는 인간의 정입니다.
한해를 정신없이 살았는데, 주머니에 남은 돈은 별로 없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을에 시간, 하늘, 그리고 사람을 되찾게 되어, 모든 것이 헛수고는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고마움이 샘물처럼 고입니다. 추수감사절입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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