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3.06.02.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영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주사랑교회 0 1,733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영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한 주 동안 신사도운동에 대한 논문을 한편 쓰느라, 정말 고생하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 논문을 쓰려니, 시간을 내기도, 연구에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시간은 총알같이 날아갔고, 결국 마감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자애로운 담당자의 배려로 일주일 시간을 연장 받아, 부담과 초조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사도관련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마음이 힘듭니다.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글과 이들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참 예수 믿기 힘들다!”는 생각이 절도 듭니다.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분들의 글은 신학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신사도운동에 대한 그들의 걱정은 지당하며, 공격의 근거도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런 반응에 제 머리는 동의하는데, 마음이 영 불편합니다. 동시에, 신사도운동가들의 설교나 글을 읽으면, 쉽게 “아멘”할 수 없고, “위험한데!”라는 생각이 거의 반사적으로 듭니다. 제 머리는 분명히 “No!”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에선 “그래도 체험을 무시하면 안 돼!”라는 미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 믿기 힘듭니다.

이 운동에 대해 비판하는 분들의 말처럼, 신사도운동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사도운동의 지도자들도 신뢰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현장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수많은 성도들을 일방적으로 “이단,” “무식한 놈,” “열광주의자”라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기존 교회를 떠나, 신사도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무조건“열광주의자들의 무식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제 자신도 말과 문자 중심의 신앙과 신학에 질식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성도들의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도 비판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신사도운동의 유행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성도들의 간절한 염원을 읽지 못하는 개혁주의자들의 냉정한 이성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대중들 앞에서 부실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남발하는 신사도운동가들의 무지한 오만도 무섭습니다. 성경의 절대성으로 성령의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신학적 오만과 성령의 자율성에 기대어 성경의 진리마저 농락하려는 영적 방종 사이에서 양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정말, 우리에게 “듣고 보고 만진 생명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죽은 문자말고, 생명의 말씀, 거짓된 영 말고, 진리의 영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영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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