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7.8.22. <회개의 타락, 지킬박사와 하이드>

주사랑교회 0 997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 같은 소설입니다. 어린이용 동화나 영화로 여러 번 각색되었고 같은 제목의 뮤지컬이 매년 공연됩니다. 덕분에 소설 내용은 널리 알려져‘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말은 인간의 이중성을 뜻하는 익숙한 숙어가 됐습니다.

헨리 지킬은 의학박사이며 법학자이고 왕립학회 회원입니다. 부자인데다 인품도 훌륭해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인사, 셀레브레이티입니다.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지킬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습니다. 품위있는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유롭게 쾌락을 추구하고 싶다는 욕망 사이의 갈등입니다. 지킬은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평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면의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인간에게서 선과 악의 본성을 완전히 분리하는 약을 발명한 겁니다. 이 약으로 지킬은 자신의 악한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자기,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신할 수 있게 됩니다. 지킬 박사는 맨 처음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의 기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을 하든 거칠 게 없을 듯한 기분이 마구 들면서 난잡하고 음탕한 생각들이 물방아를 돌리는 개울물처럼 콸콸 흘러 나왔네. 그런 가운데 책임감이라는 멍에가 스르르 놀아 없어지고 영혼은 날아갈 듯 자유롭게 느껴졌지. 그 자유의 느낌은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네. 이 새로운 생명이 첫 호흡을 토해내는 순간 나는 내가 사악해졌다는 것을, 열배는 더 사악해졌다는 것을, 나의 악한 본성에 노예로 팔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포도주처럼 기분 좋게 나를 감싸 안았네.

 

하이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물론 자기 악행에 대한 죄책감도 알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을 요즘은 ‘싸이코 패스’라고 하지요. 지킬은 하이드가 되어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얻습니다. 이 자유를 얻었을 때 지킬은 자신이 악한 본성에 노예로 팔렸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해방감을 느낍니다. 한번 선택으로 영원히 악인으로 살아야 했다면 지킬은 결코 하이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은 일종의 일탈이었습니다. 약만 한 잔 들이키면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악의 욕망을 해소하고 다시 안전한 선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하이드의 삶이 가능했습니다. 지킬박사는 자신이 악의 노예가 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노예 생활을 끝내고 선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변신약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첫번째 마약은 모두 공짜이며 모든 마약은 마지막 마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돈 주고 마약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짜로 주는 약을 ‘이건 그냥 호기심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하면서 접하지요. 그러다‘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더’하면서 빠져들고, 매번 ‘이게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이야. 다음부터 끊어야지’하며 중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답니다. 어디 마약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일상의 평범한 악에도 이런 패턴이 있습니다. 악은 중독이란 무서운 무기를 가졌습니다. 지킬 역시 악에 중독됩니다. 악이 주는 쾌감을 잊지 못하고 더 많은 약을 만들어 더 자주 하이드로 변신하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의 하이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커집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난 지킬은 약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하이드로 변해있어 크게 놀랍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지킬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하이드로 변신하는 걸 그만 둡니다. 

 

악당 하이드를 선한 지킬로 돌아가게 해주는 신비한 약 같은 것이 기독교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회개’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에는 회개를 통해 과거의 죄를 씻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개가 타락하는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선과 악의 대결, 인간의 이중성 뿐 아니라 회개의 타락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지킬은 악의 욕망을 해소하고 선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선한 지킬로 돌아온 후에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회개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 후에도 얼마 뒤 악의 유혹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 유혹의 배후에는 변신약이 있지요. 변신약만 마시면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때문입니다. 선의 세계에 있는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 머물 비밀공간과 입을 옷은 버리지 않습니다. 지킬은 자신이 욕망에 굴복해 다시 하이드가 될 것을 아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자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줄 변신약이 있기 때문에 지킬은 후회하면서도 삶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변신약으로 생각합니다. 회개만 하면 하이드와 지킬의 삶이 분리되듯이 과거의 모든 악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과거의 악행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언제든지 회개가 가능하다는 계산과 회개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오해는 기차표만 갖고 역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처럼 기독교인들을 예전의 삶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더구나 회개만 하면 죄의 문제는 끝난 거라는 잘못된 믿음은 반복되는 죄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된 회개는 남용된 항생제처럼 그나마 남아 있던 악에 대한 저항력 마저 사라지게 합니다. 악에 무감각하고 영혼의 균형을 무너지게 하는 거지요.  변신 약을 함부로 사용한 지킬 박사의 이 고백은 회개를 반복하는 기독교인에게도 해당됩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 아닌가? 빗방울이 하나하나 모이면 아무리 큰 그릇도 결국엔 채워지기 마련일세. 잠시 잠깐 악의 나락에 굴러 떨어졌던 것이 그만 내 영혼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말았지

 

얼마동안 하이드로 변신하기를 그만두었던 지킬은 악의 욕망을 참지 못합니다. 결국 다시 하이드가 되어 밤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귀족 노인을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살인까지 저지른 지킬은 비로서 자신이 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악에 무능한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 순간을 지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은 사악한 죄가 흉측한 얼굴을 드러내고 내 영혼을 노려보고 있더군. 그런데 가슴을 후벼대는 후회가 시작하면서 희열이 찾아 들었네. 내 행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지. 이제부터 하이드는 없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이제 나의 더 나은 자아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아,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더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스런 삶의 제약을 다시금 기꺼이 받아들였네. 그리고 진심으로 포기하는 뜻으로 그토록 자주 드나들던 문을 잠그고 열쇠를 짓밝아 버렸네 

 

지킬은 눈물로 기도한 후 자신의 죄악된 행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제 하이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 하나님이 주신 모습에 만족하며 살겠다고 결심하지요. 다시는 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약을 만들던 실험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버립니다. 다시는 변신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반복되는 회개를 끝내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지킬은 악의 중독에서 자기를 구하려 애를 씁니다.  선행으로 과거의 죄를 씻기로 마음 먹고 자선 사업과 종교에 몰두합니다. 너그럽고 순결한 생활로 돌아온 겁니다. 회개는 성공하고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악은 쉽게 지킬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1월 어느날 지킬은 공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평온한 휴식을 즐깁니다. 이때 지킬은 자신의 선한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킬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나도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고 나서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활발한 선행을 남들의 무신경하고 게으른 잔인함과 비교하며 슬며시 미소 지었네.

 

지킬은 자신이 저지른 죄가 다른 사람의 죄와 크게 다르지 않고, 악행을 끝내고 활발한 선행을 하는 자신이 죄에 대해 무신경하고 선행에 게으른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사라진 줄 알았던 악이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마지막 공격합니다. 약을 마시지 않았는데,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흉측한 하이드로 변한 겁니다. 

 

회개해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기독교적인 용어로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지요. 처음 회개하고 은혜를 받았을 때는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주어진 선물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은혜 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 여전히 죄를 깨닫지 못하고 악행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는데 저들은 왜 회개조차 하지 않을까, 저들에게는 주지 않은 은혜를 받았으니 나는 특별한 사람이구나. 회개조차 하지 않는 저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이구나.’    

      

처음엔 날카로웠던 회개의 칼날이 무뎌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과거를 정당화하고 자신이 행하는 선에 만족합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은 무신경하고 잔인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회개가 우월감의 근거가 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교만으로 변질된 겁니다. 숨어있던 하이드가 대낮에 나타나 지킬을 완전히 점령한 것이 이때였습니다. 반복되는 회개 속에 삶이 바뀌지 않을 때 회개의 첫번째 타락이 일어난다면 회개의 두번째 타락은 놀랍게도 회개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 겁니다. 

회개는 죄에 무능력한 자기를 발견할 때 시작됩니다. 자기 힘으로 죄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은 인간의 죄는 소진시키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합니다. 인간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믿음이 새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거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사람은 과거의 죄는 아무 상관없다는 자기 정당화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 받은 사람은 자신이 다른 보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회개가 교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에게 회개의 근거를 두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선물이 아닌 자신이 취득한 특권으로 생각할 때 회개는 죽음을 부르는 교만이 됩니다. 교만에 빠진 지킬이 하이드로 변해 최후를 맞는 설정은 회개가 교만의 근거가 될 때 그 회개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타락이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신자를 ‘죄인이며 의인’이라고 표현한 마르틴 루터의 말을 빌리면 기독교인은 ‘지킬이며 하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기독교인에게는 같은 회개를 고의적으로 반복되거나 회개가 교만이 되는 타락한 회개의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회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삶에 답답해하고 ‘진짜 회개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말하는 교만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싸움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회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기꺼이 하나님을 떠났던 일을 후회하고 어느 순간 하나님께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출발로서의 회개’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악의 자리를 떠나 선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은 언제든 다시 출발하면 될 거라는 계산을 하지 않을 때비로서 시작되며 하나님 없이 추구했던 욕망과 이익을 포기하는 ‘과정으로서의 회개’가 동반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출발하고 그 여정을 계속하는 모든 과정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거룩한 삶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거룩을 향한  삶의 전환이며 겸손을 잃지 않고 걸어야 하는 긴 여정입니다. 그 여정 끝에 지킬이며 하이드였으나 많은 갈등 속에도 결국 선하게 변신한 나를, 그렇게 나를 만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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