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2016.2.26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주사랑교회 1 2,239

 

소설을 읽다 이런 구절에 밑줄을 쳤습니다.

 

'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평수는 작더라도 내 집 한칸 마련한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던 시절이 있었고, 아이가 병치레를 할 때는 그저 아무 탈 없이 완쾌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층짜리 주택에 살면서 아들 녀석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 못마땅해할 때,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되뇌던 간절한 바람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최정화의 소설 <대머리> 중에서)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그때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지금은  갖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원했던 것을 지금 얻었는데, 얻은 것은 당연한 것, 이미 있는 것이 되어 더 이상 새롭지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답답했던 '평신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설교해도 저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를 그리워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목회자를 만나면 진심으로 섬기고 배우리라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찾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도가 몇 명이어도 좋으니 하나님 나라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공동체가 있으면 헌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 그때 원했던 것들이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공동체를 만났고 그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은 내가 뭘 원하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평신도, 부교역자로 있던 때와 담임 목회자로 있는 지금은 원하는게 다릅니다.?

성도가 빨리 늘길 바라고, 재정 걱정 안하길 바라고, 설교로 박수받기를 바라고...

이런 생각 끝에는 내가 뭔가 보여줘야하고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따라옵니다.

빨리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이 소망을 욕망으로 바꿉니다. 

주신 것 보다 주셔야 할 것에 매달리고, 우리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를 비교하게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힘으로 쟁취하겠다고 생각하면 '선물'이 사라집니다. 

선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루지 못한 욕망과 피곤한 불안이 남습니다. 

 

그때 원했던 것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원했던 것을 이미 선물로 받은 것처럼, 지금 내가 원하는 것도 결국 선물로 받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원하는 걸 주시지 않는게 하나님의 선물일수도 있겠습니다.

선물에 눈이 멀어 선물 주시는 분을 잊지 않도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우리를 어렵게도 하시고, 어둡게도 하시고, 헛되고 피곤한 일상에 버려두실 수도 있겠습니다. 

원했던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헛된 걸 원했던 마음을 거두어 가실 수 있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사이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하고 모든 삶으로 이렇게 고백하겠지요.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6)    

 

우리의 마지막 바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 이것 하나일 겁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원했던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 온전히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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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성중
Amen !